짤막한 글

[투준] 쫄보 용준형

더블제이'-' 2018. 4. 14. 19:05





 이래서 집 밖은 위험하다는 거야. 괜히 입이 심심해서 편의점 다녀오는 길에 골목에서 나는 소리에 관심을 보였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후회 중이다. 얌전히 집으로 들어갈걸. 아니 얌전히 집에나 박혀 있을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도 그냥 참을걸. 항상 아늑하던 나의 집이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오늘이 단언컨대 처음이다. 바로 저 윤두준 때문에.
 
 
 
 학창시절 학교에 유명한 놈들 한 명씩은 꼭 존재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그 존재가 바로 윤두준이다. 그리고 그런 윤두준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다. 흔히들 이웃집이라고 하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 같은 해에 아이를 낳고 지내다 보니 친자매처럼 지내면서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함께였다. 어릴 때 윤두준은 덩치가 남들보다 작았던 내가 괴롭힘을 당하면 상대방의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나를 위해 앞장서서 싸워주었다. 그런 상황이 싫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고 있으면 어느새 윤두준이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내가 이겼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래.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그렇게 머리가 크고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윤두준은 조금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어릴 때도 자기주장 강했던 이목구비는 크면서 더욱 선이 굵어져 남자답고 잘생겨지고, 질이 나쁜 놈들이라기 보단 조금 주먹질을 하고 다니는 녀석들이랑 어울리며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면서 나와는 사이가 조금은 소원해졌다.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등하교도 같이한다. 비록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의 이웃이자 엄마에겐 친구 사이니까.
 
 
 
 
 왜 하필 우리 부모님은 이런 날 여행을 가셨을까. 아무리 뒤늦은 후회를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편의점에서 얌전히 아이스크림을 하나를 입에 물고 신나는 마음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향하는 중 집에 가는 골목길에서 누군가 얻어맞는 소리가 났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끔 윤두준과 함께 집에 갈 때, 싸움에 휘말리면 윤두준은 꼭 나를 골목 귀퉁이에 세워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움에 응했다. 그때 많이 듣던 소리다.
 
 
 
 
“으... 아프겠다...”
 
 
 

 그래 거기서 멈췄어야 했어. 왜 괜한 호기심에 골목 안쪽을 기웃거리다 거기 있던 놈들이 쳐다보는 기분에 숨을 깊게 들이쉬고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제발 나를 쫓아오지 말라며 내가 다 잘못했다며 속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내 생애 가장 숨 가쁜 저녁 시간이었다. 재빨리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덕분에 얼마 먹지도 못한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려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끈적해진 손을 씻고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직도 요동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러던 그 순간 아무도 올 일 없는 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히익-”
“...”
“누... 누... 누구세요...”
“....”
 
 
 

 누구냐 묻는 말에 대답이 없자 조금 더 무서워진 나는 0.5초 내에 온 집안을 스캔하였지만,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 값비싼 보석이 있던가? 누구지? 왜 하필이면 오늘. 112에 신고를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중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인터폰을 바라보자 보이는 인영은 없고 현관문의 렌즈로도 보이는 인영이 없어 더욱 무서워졌다.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좌우를 살펴보자 초인종 앞을 아슬하게 비켜난 윤두준의 모습이 보였다. 휴... 다행이다.
 
 
 

“하아... 깜짝이야. 아... 안녕. 두준아. 무슨 일이야...?”
“...”
 
 

 
 저기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좀 해줄래? 나의 질문은 가볍게 무시한 두준은 제 집인 마냥 들어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쇼를 하던 내 모습이 민망하고 뻘쭘하여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소파에 다가가자 어디서 얻어터졌는지 윤두준 얼굴에 자그마한 상처들이 시선에 박혔다. 그 상처에 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힉... 너 얼굴에...”
“시발. 몇 대 안 맞았는데 이 새끼들 얼굴 치더라니 결국 상처 생겼네.”

 
 
 
 이 짧은 문장에 욕설과 두준이의 낮은 음성에 내가 더 쫄았다.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보던 윤두준은 갑자기 말을 건넸다.
 
 
 

“용준형. 집에 반창고 있냐?”
“...어... 어? 뭐라고?”
“한 번에 못 알아듣지? 확.”
“힉- 미안... 있을 거야...”
“연고도 있으면 좀 부탁해.”
 
 
 

 두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구급상자가 있을 법한 화장실과 안방. 거실을 돌아다니며 구급상자를 찾고 있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윤두준은 저에게 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꼭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등하굣길은 혼자 두지 않는다. 희한하다. 오늘도 얻어맞고 와서 욕을 한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아마 때린 그놈들을 생각하며 혼잣말을 한 것이다. 갑자기 드는 생각에 순간 멈춰서 멍을 때리고 있던 순간 뒤통수에 닿는 두준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갑자기 온몸이 한기에 휩싸이고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에 얼른 구급상자를 찾았다. 아마 재깍 찾지 못했다면 두준이 얼굴에 있는 상처가 나에게로 옮겨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아프면 말해. 나 처음이란 말이야.”
“그냥 상처에 약 바르고 밴드 붙이면 돼.”
“...그래도... 으... 아프겠다...”
 
 

 
 얼굴은 연고며 반창고 붙이기가 불편하다고 하면서 두준이는 구급상자를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다가오는 나에게 치료를 부탁했다. 소파에 앉아있는 두준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윤두준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면봉에 약을 조금 덜어내며 두준을 바라보자 그때까지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심드렁하게 약 바를 때 불편할까 봐. 란다. 근데 어차피 무릎은 꿇어야 눈높이가 맞는데...라고 반문하려다 참았다. 말했잖아. 오늘 잘못하면 저 상처 고스란히 나한테 올 것 같다고.
 
 
 

 면봉에 묻힌 약을 상처에 바르는데 보는 내가 따가워 나도 모르게 절로 미간이 잘도 구겨진다. 근데 두준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리고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시선이 끈질겨 내 눈길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차례차례 연고를 바르고 눈에 띄는 상처에는 밴드를 붙이며 치료를 하고 입술 언저리에 묻어 있는 피를 닦자 두준의 입에서 얕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곤 인상을 한가득 쓰며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내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엄마... 무서워.
 
 
 
 
“힉- 미안. 아... 파?”
“...”
“그래도 피 안 닦으면... 약을 바를 수가 없어서...”
“...”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나도 모르게 내뱉는 변명을 가만히 듣던 두준이는 그대로 손을 올려 내 머리통에 얹고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행동에 손을 멈추고 바라보자 그제야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래도 웃는 모습은 예전이랑 변함이 없구나.
 
 
 

“고마워. 용준형.”
“아... 아니... 뭐... 내가 너무 서툴러서 미안해...”
“아니야. 어차피 혼자면 하지도 않았을 건데.”
“아줌마 걱정하시겠다... 근데 나 집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 아까 편의점.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왜 골목은 쳐다봐 쳐다보길. 그러다 시비 붙으면 어쩌려고.”
“...에?”
“에?가 아니고, 멍충아. 골목에서 붙었던 거 나였다고. 너 봤어.”
“아. 그랬구나... 미안해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냥 와 버렸어...”
“누가 거기서 구해달라고 했냐. 앞으론 그런 거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 괜히 시비 붙는다.”
“응... 그럴게. 근데 집은 어떻게 가려고... 아줌마 걱정하실 텐데...”
“오늘 하루만 신세 좀 지자. 아줌마 여행 가셨잖아. 하루만.”
 
 
 

 두준이가 들어와서 구급상자를 찾을 때까지 느꼈던 어색함과 불편함이 녹아내리듯 없어졌다. 처음에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두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미친 듯이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오랜만에 나눈 대화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두준의 걱정 때문에? 그리고 며칠 전 등교 시 흘리듯이 꺼냈던 부모님의 여행 이야기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조금 기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니 적어도 내 마음은 이렇듯 한없이 간사하다.
 
 
 

 차마 손님에게 소파에서 자라고 할 수 없어 갈아입을 옷과 내 방 침대를 내어 주었다. 처음엔 두준이도 망설였지만 이내 알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누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가만히 오늘 하루 생긴 일을 생각해보았다. 평소와 똑같이 학교를 갔다 오고, 그저 군것질을 사러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던 하루였지만, 그 어느 때 보다 기억에 남는 하루였던 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은 두준이의 웃는 얼굴일 거다.
 
 
 
 
 음? 나 언제 잠들었지. 이불도 제대로 안 덮은 것 같은데 왜 이불을 덮고 있지?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이미 두준이는 옷도 가지런히 개켜놓고 집으로 간 것 같다.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지 아쉽게... 시간이나 확인할 겸 핸드폰의 액정을 켜자 확인 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음이 표시됐다. 그 메시지를 확인한 내 얼굴에는 아마도 웃음이 피어올랐을 거다.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집에 왔다. 잘 자고 일어나고 월요일에 보자.



 아마도 나는 다가오는 월요일을 한없이 기다릴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