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한 글
[투준] ordinary
더블제이'-'
2018. 8. 8. 00:21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날들을 보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대해 크게 머리 복잡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될 대로 되겠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시간이 지나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감수해야지. 내 인생 내가 책임지고 사는 거지 부모님이나 옆에 있는 친구 놈들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또 그 상황에 닥치게 되면 또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개썅마이웨이? 이 정도일 것이다.
그런 나의 성격을 잘 알고 계신 부모님께서도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하셨던 말씀은 ‘우리가 네 인생에 관여하는 순간 식구 모두가 피곤해진다.’라는 백번 옳으신 말씀을 하시고는 정말로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평범하게 자라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수능을 치르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취업을 했다. 그렇게 30년 인생 동안 크게 특별한 것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 한 가지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대학교 시절. 교직 이수를 병행하여 선생님이 되었고, 지금은 어느 여고로 발령받아 미술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단 한 번의 특별했던 선택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나만 보면 대놓고 자리를 피해버리는 바로 저 체육 선생 윤두준 때문에.
처음으로 출근을 하게 된 날 정말 살면서 그렇게 머리 복잡하게 생각해본 적은 단언컨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 요즘 학생들 무섭다던데.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들과 다른 분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걱정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머릿속은 전원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처럼 까맣게 변해버렸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안고 교무실에 뻘쭘하게 서 있으니 인상 좋으신 교감선생님께서 다정하게 반겨주셨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체육 선생님이라며 그를 소개해 주셨다. 나만 보면 피하는 그 윤두준을. 소개를 해주시면서 한 번에 이렇게 멋진 선생님들이 오셔서 우리 학생들도 신나겠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교감선생님의 얼굴 덕분에 내 머릿속은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나 역시 웃으며 내 앞에 있는 체육 선생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미술 담당 용준형이라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 아 네. 윤두준입니다.”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의 행동에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저 사람은 침을 뱉고도 욕까지 할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말을 건네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하는 손을 무시하기까지. 허공에 외롭게 남겨진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갑자기 성질이 돋아 인상을 확 구겨버렸다. 그리고 말도 없이 뒤를 돌아 내 자리를 찾아 그대로 앉아버렸다.
인문계는 특성상 예체능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가 않다. 예체능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1학년 때야 강당이나 운동장에 나가서 체육도 하고, 미술도 직접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그저 자습시간의 일환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마저도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경우 2~3주 정도 겨우 시간을 내서 평가에 필요한 부분만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2학년 때 문과와 이과로 나뉘면서 예체능반도 개설이 된다고 한다. 정규수업은 똑같이 듣지만, 체육과 미술 시간. 즉 예체능 시간은 각자의 진로에 맞춰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체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모여있기에 담임과 부담임 역시 체육과 미술 선생으로 배정된다고 한다. 내가 이 학교에서 크게 사고를 쳐 잘리지 않는다면 2학년 예체능반은 나와 윤두준 선생이 맡게 될 것이다.
어리숙했던 첫 출근을 시작으로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윤두준 선생과 나는 학생들의 인기투표의 1위를 두고 다툴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고, 다행히 내가 생각한 것처럼 학생들이 무섭거나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두준 선생만이 나를 조금 껄끄럽게 대했다.
내가 말이라도 걸까 싶으면 허둥지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피해버리거나, 괜히 다른 선생님을 불러 밖으로 나간다던가. 아, 하루는 이런 적도 있었다. 매번 무시당해도 꾹 참고 윤 선생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윤 선생님, 오늘 점심같이 ㅁ-”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 선생은 티가 나게 어깨를 흠칫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선생님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그 뒤로도 말할 기회가 생겨도 윤 선생은 변하지 않고 나를 피했다. 아주 하루 이틀도 아니고 꼴 보기 싫어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평화롭고 평범한 날들에 아주 미세한 문제를 일으키는 윤 선생의 뒤통수를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죽어라 째려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
정말이지 꽃샘추위를 견디며 출근한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무더운 날씨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회사의 장점은 시원하지만, 단점은 회사다.’ 명언이시네. 하지만 이마저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 공공기관, 교육기관 등은 일정 온도를 유지하라 내려온 공문에 행정실에서는 이미 26도로 맞춰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교무실은 선생님들의 온기와 컴퓨터가 내뿜는 열기로 인하여 항상 찜질방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통 시원해질 생각이 없는 날씨를 탓하며 창밖을 바라보자 학생들이 열심히 뛰고 있었다. 이런 날에도 체육을 하는구나 싶어 멍하니 창문 너머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윤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정말 찰나의 순간. 눈 깜박하는 사이 윤 선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깜짝 놀라 한걸음에 달려가 창문을 열고 바깥 상황을 살펴보니, 윤 선생은 공을 차고 있던 발이 엉켜 혼자 운동장에 나자빠져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학생들이 다가와 윤 선생을 겨우겨우 부축해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으며 윤 선생이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뭔가 내 책임도 있는 듯한 느낌에 양호실로 향했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어쩌겠나 싶어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발목에 붕대를 감은 윤 선생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하지 말라는 짓 몰래 하고는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주인한테 혼나기 직전의 강아지 같아 티가 나지 않게 입을 가리고 웃으며, 의자를 당겨 윤 선생 앞에 앉았다. 그리고 정말로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숙이고 있는 윤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티가 나게 들썩이는 어깨에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파요?”
“... 괜찮아요. 근데 용 선생님이 여기는 왜....”
“그냥 나랑 눈 마주치고 자빠졌는데, 내 책임도 있는 것 같고 해서.”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예쁘게 쳐다보래ㅇ-”
“... 네?”
마지막으로 들린 윤 선생의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이 인간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예쁘게 쳐다봤다고?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을 이해한 직후 내 얼굴은 정말 맛있게 익은 체리처럼 발하게 변해버렸고, 특히나 안절부절못하며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있는 윤 선생을 보고 있자니 더욱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윤 선생은 계속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이내 무언가 다짐한 듯이 주먹을 꽉 쥐고는 결심한 듯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혀를 내어 입술을 축이더니, 이내 입술을 열었다.
“첫 출근하고 처음 본 순간부터 용 선생님께 반했어요. 선생님이 저 싫어하시는 건 알지만, 가까이 다가오시거나 말을 걸면 제가 주체가 되지 않아 피했습니다. 용 선생님. 좋아해요.”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져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평범한 삶에 특별한 순간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그 순간 윤 선생을 마주했을 때의 평소 불쾌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특별하다고 느끼는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완전히 정신이 들었을 땐, 윤 선생 품에 안겨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모든 시간을 공유했다. 점심시간에도 함께였고, 우리 둘 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몰래 자리를 비우고 사용하지 않는 창고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입을 맞추기도 했다.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 나는 윤 선생의 목에 팔을 두르고 조금 더 깊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는 서로의 집에서 함께했다. 이렇게 24시간을 붙어있으니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 친하지 않은 우리 둘을 보시며, 다음 해 2학년 예체능반을 걱정하셨던 교감선생님께서도 이제는 우리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며 웃으셨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여름날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 여름보다 더욱 뜨겁게 사랑을 했다. 그리고 윤두준을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스며들어, 그를 사랑하는 것조차 평범하게 흘러가는 내 삶의 그저 일부로 여겨졌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계절은 또다시 변하고 어느새 겨울 방학을 앞둔 시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사랑도 점점 깊어졌고, 학교에서도 함께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학생들은 우리를 힐끔 쳐다보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나 짧게 비명을 지른다. 아, 무서운 것을 보거나 놀랐을 때 외치는 비명이 아닌 약간의 감탄이 섞인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윤 선생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학생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의아함을 가득 담아 윤 선생에게 물었다.
“뭐지? 학생들이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글쎄. 이제 겨울 방학하면 우리 잘생긴 용 선생님 못 봐서 아쉬운가 보지.”
“그거 은근 돌려서 윤 선생님. 당신 이야기하는 거 아냐?”
내가 가늘게 눈을 뜨고 이야기를 건네자 윤 선생은 웃으며 ‘들켰다.’란다. 그래. 윤두준 당신 잘생긴 건 인정합니다.
겨울 방학 기간에는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맡는다는 생각을 하자 덜컥 걱정부터 되었다. 그런 나의 곁에서 끊임없이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우리 윤 선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금방 포기해 버렸을 거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앞으로의 대해 함께 걱정하고, 서로를 격려해가며 함께 지냈다. 우리는 새해를 함께 맞이하고 더불어 새 학년 새 학기를 준비했다.
2학년 예체능반의 부담임을 맡게 되어 해당 교실 문 앞에 서 있으니, 처음 이 학교에 발령받아 온 날보다 더 떨리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부로 이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 일 년 동안 나는 이 반의 부담임이 된다. 일 년 동안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새삼 얼굴에 나타났나 보다. 내 옆에 있던 윤 선생이 웃으며 내 등을 쓸어내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용 선생님. 당신이 인상 써도 가장 예쁜 순간은 내 밑에 있을 때니까 얼굴 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윤 선생을 보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잡은 문을 열고 윤 선생과 함께 교실로 들어가 교단에 섰다. 학생들을 바라보자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일 년을 함께 지낼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담임인 윤 선생과 내가 인사를 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는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더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윤 선생이 ‘질문하세요.’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 학생은 윤 선생과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선생님!!! 선생님들 사귀는 소문 도는데 진짜로 사귀세요?”
학생의 질문에 깜짝 놀라 윤 선생을 바라보자 윤 선생은 세상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본다. 그 표정에 질문한 학생도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윤 선생이 반대로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어디서 그런 소문 들었어. 누가 내가 다니는 거야.”
“...죄...송해요. 저희도 여기저기서 들었어요...”
학생들은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하게 대답했고 윤 선생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출석부를 챙기며 학생들에게 ‘새 학기 첫 수업부터 흐트러지지 말고 수업 잘 들어.’라고 이야기하고 문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학생들은 시무룩해 하며 책상 위에 교과서를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슬쩍 웃으며 윤 선생 뒤를 따라나서자 별안간 윤 선생이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학생들을 바라보자 학생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윤 선생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윤 선생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 소문 내가 냈어. 그러니까 앞으로 더 소문내고 다니도록 해.”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들리는 학생들의 비명에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평범하고 보통의 나날들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