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한 글

[투준] 장난스런 연애

더블제이'-' 2018. 8. 23. 17:29






“와. 시발. 존나 잘 생겼어.”
“풉!”
“... 야. 더럽게.”
 
 
 
 
 갈수록 더워지는 날에 이기광과 함께 강의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갈 곳도 없고 해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는 절로 감탄이 섞인 욕이 나왔다. 그런 내 말에 이기광은 머금고 있던 커피를 시원하게 뿜어냈고 입가를 닦으면 나를 바라보았다.
 
 
 
 
“와. 씨. 그런 말은 사전에 공지를 좀 하고 해.”
“사전 공지를 어떻게 하냐. 우리 기광이 생각이 있어? 없어?”
 
 
 
 
 나의 책망이 담긴 말에 기광이는 눈을 가늘게 떠 나를 흘겨보더니 이내 말을 건넸다.
 
 
 
 
“그래그래. 그렇다고 치자. 누가 또 존나 잘생기셔서 용준형이 이런 말까지 하셔.”
 
 
 
 
 들려오는 기광이의 질문에 다른 말없이 그저 턱짓으로 기광이의 뒤쪽에 놓인 카운터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 내 행동에 기광은 몸을 돌려 내가 말한 남자를 확인하더니 이내 ‘아-’라는 소리와 함께 대수롭지 않게 몸을 돌려 커피를 머금으며 말을 전했다.
 
 
 
 
“아, 저 선배 존나 유명해. 윤두준이잖아.”
“윤두준?”
“아, 맞아. 우리 준형이는 허구한 날 클럽에서 사느라 학교에 관심이 없으시지.”
 
 
 
 
 기광이의 말에 이번엔 내가 눈을 가늘게 떠 맞은편에 앉아 커피나 들이켜고 있는 이기광을 째려보았다. 지금 친구가 잘생긴 사람을 발견해서 아주 세상이 황홀한데 이렇게 초나 치고 말이야. 어?
 
 
 
 
“닥치고 아는 거 다 불어.”
 
 
 
 
 내 말에 기광이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만지더니 핸드폰을 내 앞으로 쓱 밀어 넣었다. 앞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보자 학교 축제 때의 행사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었다. 의아함을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 속에는 까만 슈트를 차려입은 윤두준이라는 사람을 선두로 하여 시작되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질 못하자 기광이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경호학과 윤두준. 얼굴 돼. 몸매 돼. 거기다 성격까지 좋아. 학교 행사 때마다 단골 인사지. 인기 존나 좋은데 아직 애인은 없다는 소문. 여기까지.”
 
 
 
 
 경호학과 윤두준이라. 아직 애인도 없단 말이지. 오늘부터 당신이다. 윤두준.
 
 
 
 
 
 
*
 
 
 그렇게 다음 날부터 나는 다짜고짜 윤두준을 찾아갔다. 허공에서 마주치는 시선에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자, 엉키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저 얼굴 가득 궁금증을 담아냈다.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조금 더 의아함을 담아 나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 어. 그래. 실례지만 누구...?”
“아. 어차피 다른 과라 모르실 거예요. 그냥 선배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나랑? 왜?”
“그냥요. 친해지는데 이유 있나요. 선배 엄청 유명하시기도 하고,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내 말이 끝나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 보였다. 너무 당돌하게 이야기했나.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줘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들이대는 것도 신선하고 나쁘지 않다며 혼자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아. 괜찮아. 그럼 바빠서 이만.”
 
 
 
 
 ...?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어디 가도 빠지거나 꿀리지 않는 천하의 용준형이 지금 까인 건가? 까였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내 몸은 잠시 굳어버렸고, 그런 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기광이는 자지러지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잡더니 다시 자지러지게 웃어 보인다.
 
 
 
 
“지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냐.”
“저 선배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 시발. 두고 봐.”
 
 
 
 
 그 뒤로 나는 윤두준만 보면 매일같이 들이댔다. 아니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내가 찾아가서라도 들이댔다. 어느 정도였냐면 저 멀리서 내가 보이기만 해도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팔을 툭툭 치며 ‘야, 준형이 온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앞에 다가서면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음료수를 마시거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내 이름은 알아요?”
“내가 알아야 해?”
“선배. 나 싫어하죠.”
“...”
“뭐. 괜찮아요. 내가 선배를 좋아하니까요.”
“내가 왜 좋은데?”
“뭘 물어요. 잘생겼잖아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건네는 내 말에 그는 어이가 없는 듯 픽 웃는다. 그렇게 웃는 모습조차 잘생겨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다 이내,
 
 
 
 
“그래. 고맙다. 그럼 수고해.”
 
 
 
 
 란다. 허구한 날 뭐가 그렇게 바쁘고 수고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피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고, 나는 그에게 단 한 걸음도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항상 똑같았다. 그를 쫓아다니며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친해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는 나를 그는 밀어내기에 바빴다. 출석 찍듯 매일같이 들락거렸던 클럽도 마다하고 지금 윤두준 저 새끼만 죽으라고 쫓아다니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에 서러워졌다. 이게 벌써 몇 달째인지. 그리고 그 수많은 시간 동안 그는 내 이름 한 번 불러주지 않았다. 하지만 속상해도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을 달래가며 또다시 그를 찾아 그 넓은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마주치면 똑같이 벌어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선배는 오늘도 잘생겼네요.”
“...”
“이젠 대답도 안 하시네요.”
“넌 바쁘지도 않냐?”
“저요? 겁나 바쁘죠.”
“그럼 나 찾아오지 말고 바쁜 일 해라.”
“그래도 선배 보는 일이 제일 일 순위죠.”
“...”
 
 
 
 
 나한테 말 한 번 걸어보겠다고 줄 선 놈들이 한 트럭인데 ‘내가 지금 윤두준 당신한테만 이러고 있습니다. 내 성의를 봐서라도 다정하게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주세요. 이것이 용준형의 소박한 바람입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대화를 아무리 이어나가려 해도 그는 내 말을 무시하거나 밀어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러한 날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니 이제는 그가 어디에 있을지 뻔히 알게 되는 그런 상황까지 와버렸다. 어차피 그는 행동반경이 그리 크지 않아, 있는 곳은 거기서 거기였다. 역시나 오들도 뻔한 곳에 있는 그를 발견했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그의 주위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 주위 자판기에 몸을 숨기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후배들이란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하던데 후배들 역시 나와 같은 소리를 한다.
 
 
 
 
“선배님. 진짜 너무 멋있어요!!!”
 
 
 
 
 들리는 후배의 말에 그는 쑥스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갉작였다. 그리고는 웃으며 고맙다며 대답한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런 그의 대답과 웃음. 처음 보는 윤두준의 모습에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싶었다. 그 순간 순식간에 초라해지는 나 자신에 화가 나 빠르게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는 윤두준에게 그저 무시하고 밀어내도 좋은 사람 딱 그만큼뿐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허탈한 마음을 안고 클럽을 가려고 하였으나,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에 핸드폰을 들어 기광이에게 연락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며 걸어오는 기광이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한 병이 되고, 점점 늘어나는 술병에 기광이는 내 손등을 ‘짝’소리가 나게 때린다.
 
 
 
 
“아파. 인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을 마셔? 오늘 소주가 너랑 싸우자고 하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이쁜 기광아.”
“... 취하셨어요? 아님 미치셨어요?”
 
 
 
 
 몸서리를 치며 대답하는 기광이의 목소리에 그저 나는 웃으며 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입속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계속해서 삼켜내고 있었다. 이 잔을 끝으로 윤두준을 그만하려고 한다. 아무리 내가 해보아도 나는 그에게 아니었나 보다.
 
 
 
 
 거하게 술을 마신 다음부터 기광이의 옆에 붙어있으니 궁금했나 보다. 조심스레 나에게 ‘윤두준 선배 보러 안 가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딱히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
 
 
 
 
 나름 이 학교 캠퍼스도 크다고 소문났던데 이렇게 만나는 것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쫓아다닌 덕분에 저 멀리서도 그의 모습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를 바라보지 않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광이는 내 옷을 잡아당기며, 그의 존재를 알렸지만 나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말없이 그대로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나의 행동에 기광이는 놀란 듯 잡은 소매를 그대로 쥐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 역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 자리를 벗어났고, 그 후에도 어쩌다 마주치는 윤두준을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내가 따로 찾아가지 않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고맙게도 기광이는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교수가 들어오기 전 강의실에 앉아 기광이와 한참을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그 모습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머뭇거리며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동기인가 싶어 뚫어지게 바라보니 나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며 ‘바... 밖에 누가 찾아왔어.’라는 말만 건넨다. 여기서 나를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싶어 고개를 쭉 빼고 강의실 문 너머를 바라보니 윤두준이 서 있다. 그 모습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윤두준이다.’하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에 바빴다.
 
 
 
 
 자꾸만 쏟아지는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항상 나를 바라볼 때의 예의 그 싸늘한 얼굴을 나를 바라본다.
 
 
 
 
 그의 모습에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요즘 원하는 대로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눈에도 띄지 않게 엄청나게 얌전히 다녔는데 부족했나 싶었다. 이 외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어지는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셔내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야.”
“네.”
“요즘은 왜 안 찾아오냐?”
 
 
 
 
 지금 내가 무엇을 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얼굴 가득 궁금증을 담아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요즘 왜 안 보이냐고.”
“선배가 원했으니까요.”
“내가 언제?”
“항상이요.”
“그래서 이제 더 안 하려고?”
“네. 저도 질려서요. 재미없어요.”
 
 
 
 
 나의 대답을 끝으로 한동안 서로 오가는 말은 없었다. 그저 나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갈증이 났다. 갑자기 찾아와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것인지 싶었다. 그리고 그의 뒤쪽에서 걸어오시는 교수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들어가 봐도 되죠? 곧 수업 시작이라.”
 
 
 
 
 그리고는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빠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강의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강의가 끝이 나고 문밖으로 나가자 윤두준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 하자 내 소매를 끌어당기며 붙잡는다. 그 모습에 기광이는 ‘먼저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고 그제야 내 소매를 놓아준다. 그의 행동에 아무 표정 없이 가만히 마주 보고서자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조금.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이제 내가 싫냐?”
“싫은 게 아니고 관심 없어요.”
“한순간에?”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윤두준은 나에게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나이에 스무고개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제 알아서 떨어져 주겠다는 대도 왜 이러나 싶어 열이 올랐다.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내려온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선배. 선배가 원하시는 대로 됐잖아요. 가보겠습니다.”
 
 
 
 
 그런 그 바로 다음 날부터 우리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면 어떻게 알고 그는 나를 찾아와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의실로 찾아봐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커피를 건넸다. 처음 하루 이틀이야 나 역시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지금도 이렇게 내 이름을 부르며 앞에 와 있는 윤두준에게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용준형한테 인사해.”
“뭐 하러요.”
“질리고 재미없다며. 그래서 이제 내가 시작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