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짤막한 글

[투준] 형

더블제이'-' 2018. 6. 14. 00:11







“준형아.”
“.....”
“우리 이쁜 준형아.”
“.....”
“야. 용준형.”
“하아. 윤두준. 진짜 맞을래?”
 
 
 
 
 아무리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엄연한 형이라고.
 
 
 
 
“윤두준. 내 명찰 봐봐. 무슨 색이냐.”
“초록색.”
“그럼 니 명찰은?”
“자주색.”
“다르지? 녹색은 2학년. 자주색은 1학년. 고로 우리 나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겠지?”
“한 살 가지고 유난 떨긴.”
“야. 유난이라니. 너 크고 나서 한 번이라도 나한테 형이라고 한 적 있냐.”
“사회 나가면 띠동갑도 친군데 무슨. 준형아. 이따 같이 가. 수업 잘 듣고.”

 
 
 저. 버르장머리.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하고 교실로 사라져버린다. 깊숙한 곳부터 올라오면 두통에 머리를 살짝 짚고는 나 역시 교실로 들어갔다.
 
 
 
 
“왔어. 준형아. 오늘도 꼬맹이랑 같이 왔어?”
“...... 걘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
“왜 그래도 귀엽잖아. 너만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준형아-. 하는 것도.”
“그럼 기광아. 너한테 넘겨줄까?”
 
 
 
 
 나의 말에 해맑게 웃던 기광이는 이내 미소를 지우고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그러면서 나한테 윤두준이 귀엽다고 하는 건가. 나쁜 놈.
 
 
 
 
 
 
*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용준형. 나에게 매일 이름 부르면서 금붕어 똥마냥 따라다니는 놈은 이웃집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윤두준이다. 어릴 적 이웃으로 두준이네가 이사를 오면서 가까워졌다. 거기에 한 살 뿐이 차이가 나지 않는 우리는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로 지내게 되었고, 어릴 적 두준이는 ‘준형이 형’하며 잘 따랐다. 그런데 사춘기가 무섭게 온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호칭도 생략하며 그저 이름으로만 부른다. 무슨 한 살로 유난을 부리냐 싶겠지만, 처음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준형아.”
“...... 뭐?”
“준형이라고. 뭐. 너 이름도 모르냐?”
“아, 아니.”
“뭘 놀래. 한 살 가지고 꼬박꼬박 형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두준이와 십여 년을 넘게 지내면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그 뒤로는 무던히도 나에게 심술을 부렸다. 중학교 시절 기광이와 함께 있는 나를 보면 괜히 가방을 치고 지나가거나, 축구를 하다가도 갑자기 우리 쪽으로 공을 차버린 적도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는 찾아와서는 말도 없이 그저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처량해서 손을 들어 머리를 헝클이자 ‘어디서 애 취급하냐’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년은 아주 편하게 보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딱 1년. 그만큼이었다. 어느 날 집 앞에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윤두준이 서 있었고, 놀란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던 두준이는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와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주 친절히 자신의 명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준형아. 이제 학교에서 매일 보겠다.”
 
 
 
 
 다음 날 학교에 가자마자 기광이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중학교 시절 그놈이 또 왔다고. 그러자 기광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 그렇지 않아도 축구 동아리 가입 신청서 내고 갔더라.’라고 말해주었다. 아, 이미 동아리도 신청했어...? 빠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여러 소문의 중심이었던 두준이는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두루두루 친할 수 없는 성격에 기광이랑 몇 년째 함께 다니고 있었고, 여학생과는 말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두준이는 달랐다. 매일 선물과 편지를 받았고, 그 받은 선물을 내 눈앞에 보이며 자랑을 했다.
 
 
 
 
 한 번은 유독 그날따라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거기다 두준이는 같이 집에 가자며 떼를 썼고, 그날은 축구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학교가 끝나고도 나는 운동장 한쪽에 앉아 넋을 놓고 윤두준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윤두준은 신나게 축구를 했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저놈을 떼어낼 수 없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활동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두준이는 그날 받은 선물을 보이며 자랑을 했다. 순간 그 모습이 그렇게 꼴 보기 싫었다.
 
 
 
 
“야, 준형아. 이거 봐라. 장난 아니지. 이거 준 애 이쁘더라.”
“응. 그랬어? 그럼 그 애랑 사겨.”
“... 뭐? 야. 뭐라고 했어?”
“그 애랑 사귀라고. 예뻤다며. 나한테 자랑질하지 말고.”
“야, 용준형. 말 그따위로 뿐이 못하냐.”
“나한테 왜 자랑질이냐고. 내가 니 친구냐.”
 
 
 
 
 순간 두준이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길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차며 성질을 냈다. 누가 축구부 아니랄까 봐. 돌 날아가는 거 봐라. 저러다 차에 맞기라도 하면...... 여자친구라도 생기면 질투 장난 아니겠네 등의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면서 가던 길을 말없이 걷고 있는데, 귓가에 불쑥 두준이의 음성이 들렸다.
 
 
 
 
“용준형. 오늘 말은 못 들은 거로 할게.”
 
 
 

 두준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없어 이내 물어보려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오늘은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후로부터 나에게 자신이 받은 선물을 자랑하지 않았다.
 
 
 
 
 
 
*
 
 
 해가 내리쬐는 날. 체육 시간에 이기광이 무던히도 열심히 뛴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쉬는 시간에 배가 고프다며 찡찡거려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점으로 향했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는 길에 갑자기 기광이 발걸음을 멈추곤, 내 옷자락을 끌어당긴다. 그 모습에 앞서 걸어가던 나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기광이 손가락으로 한쪽으로 가리킨다. 기광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두준이 서 있었다. 어느 여학생과 함께.
 
 
 
 
“꼬맹이 고백받나 보다.”
“......”
“하긴. 꼬맹이 정도면 고백 많이 받겠지. 얼굴도 잘생겼고.”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기광이는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이야기를 했다. 여학생의 고백을 받은 두준이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이었고, 처음 보는 두준이의 얼굴에 나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대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여학생은 뒤를 돌아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고, 두준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한걸음에 우리 쪽으로 걸어와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있는 기광이의 얼굴을 손으로 살짝 밀어냈다.
 
 
 
 
“야. 감히 후배가 선배 얼굴에 손을 대?”
“선배 자리 거기 아니니까 비키십쇼.”




 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왜 늬들끼리 난리니? 어깨 주인인 나도 가만히 있는데? 그러면서 두준이는 내 어깨를 털어내며 물었다.
 
 
 
 
“매점 가냐? 뭐. 볼살 통통한 준형이도 좋지.”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볼살을 만지는 두준이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처음 보는 무표정 윤두준의 얼굴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항상 내 옆에서 까부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퍽 인상에 남았다. 그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는구나.
 
 
 
 
 
 
*
 
 
 기광이가 제발 부탁이라며 자기 대신 미팅을 나가 달라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인상을 확 구기고 바라보자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며 매달렸다. 힘들게 만든 자리인데 오늘 동아리 모임이 있다고 했다. 아니, 무슨 동아리 회장이 그런 것도 몰랐냐며 타박을 주자 갑자기 잡힌 모임이라고 한다. 일주일치 간식을 조건으로 수락을 했고, 두준이에게는 집에 일이 있어 먼저 간다고 이야기하였다. 왜 두준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기광이 말한 장소로 가니 3명씩 짝을 맞춰 앉아있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불편하고 어색했다. 웃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함께 했던 여학생과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달빛은 환하게 나를 비추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무거웠다. 아파트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는 도중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힉. 어깨가 움츠러들게 놀란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벤치에 앉아있는 형체가 보였다. 그곳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자 두준이임을 알아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깜짝이야. 놀랬잖아.”
“.....”
“여기서 뭐하고 있어?”
“집에 일 있다더니. 여자 만나는 일이었냐?”
“어? 어, 어떻게 알았어?”
“기광 선배.”
 
 
 
 
 이기광. 이 새끼. 기껏 두준이를 속이고 나온 것이 말짱 꽝이 되어버렸다. 내가 대답이 없자 두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곳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그리고는 살짝 얼어붙어 있는 나를 보더니 픽 웃어 보인다.
 
 
 
 
“왜. 내가 뭐라고 했어? 만난 여자랑은 잘 됐어?”
“아, 아니. 두준아. 연락처도 안 받고, 어...”
“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었냐? 거짓말할 만큼?”
“아,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그게 다 기광ㅇ.....”
“됐다. 용준형. 그동안 내가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
 
 
 
 
 그러자 두준이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준이의 손목을 잡자 빠르게 내 손을 뿌리쳤다. 뿌리쳐진 손은 그대로 갈 곳 없이 허공에 머물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준이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이기광에게 엄청나게 쏘아붙였다. 왜 미팅 간다는 이야기를 했냐. 왜 했냐며 정신없이 쏘아붙이자 기광이 내 어깨를 잡고 진정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과했다.
 
 
 
 
“말해서 미안해. 어제 꼬맹이가 너무 애타게 널 찾았어.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거야. 왜 꼬맹이랑 무슨 일 있었어?”
 
 
 
 
 기광이의 말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두준이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내 옆에서 장난스럽게 웃어넘기고, 내가 먼저 손이라도 대면 스킨십을 했다고 좋아했는데 어제는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기광과 매점을 가는 길에 두준이를 만났다. 나는 으레 두준이 아는 척을 할 줄 알고 어떻게 받아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 앞으로 지나가면서도 기광이에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라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갔다. 내 마음에 작은 종이 울렸다. 하지만 그 여파는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울렸다. 뒤를 돌아 두준이의 앞으로 갔다. 그러자 두준이 역시 멈춰 나를 바라본다. 두준이 옆에 있던 친구가 ‘아는 선배님이셔?’라고 묻자 두준이 그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아는 형이야. 하실 말씀 없으시면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온종일 집중이 되질 않았다. 가슴은 답답했고,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무엇 하나 잡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두준이의 반으로 찾아가니 이미 두준이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집에 들어가서도 창문으로 두준이가 지나가나 살펴보았지만,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두준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매시간 찾아와 괴롭혔을 놈이 나타나질 않으니, 기광이 역시 ‘꼬맹이랑 싸웠어?’라며 묻는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싸웠다기보단 일방적으로 피하는 것이니.
 
 
 
 
 나날이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두준이를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를 만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기광이와 함께 매점을 갈 때는 두준이네 반을 의도적으로 지나갔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만나기도 하였지만, 두준이는 표정 없이 우리를 지나가며 나지막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만 건넸다. 물론 인사의 대상도 내가 아닌 기광이를 향해 있었다.
 
 
 
 
 하루는 날을 잡고 놀이터에서 두준이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두준이의 모습이 반가워 한걸음에 달려가 두준이 앞에 섰다. 두준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가만히 들어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고, 그 사람이 나인 것을 인지하자 가볍게 목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
“두준아. 왜 나 피해?”
“그런 적 없습니다.”
“너 나한테 존댓말 안 했잖아. 왜 그래. 응?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없습니다.”
“나 좀 봐. 응?”
 
 
 
 
 낮은 한숨을 쉬던 두준이 시선을 돌려 까만 눈동자 안에 나로 가득 채웠다.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마주할 수 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준이의 팔을 잡으며 ‘내일 학교같이 가자.’라고 말하는 순간, 두준이는 그 여학생이 고백하던 순간 보여주었던 무표정의 얼굴을 하곤, 잡힌 팔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조심히 들어가세요. 형.”
 
 

 
 이라 인사하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듣기 싫은 적은 처음이었다. 두준이가 부르는 형은 마치 저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때, 거리를 두기 위함에 뱉는 호칭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기광에게 건네는 ‘선배’라는 호칭이 더욱 정감 있게 들렸다. 그 자리에 서서 나는 한동안 ‘형’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두준이에게 듣고 싶었던 호칭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에 붙기는커녕, 까끌까끌한 느낌만이 입안에 남았다.
 
 
 
 
 며칠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옆에서 기광이 ‘밥은 먹는 거냐.’, ‘잠은 자는 거냐.’라 물으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두준이의 아무 표정 없는 얼굴과 차갑게 내뱉는 ‘형’이라는 소리만 맴돌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기광이 내 손목을 끌고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내 안을 헤집고 다닌 녀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예전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던 그 장소에서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어. 꼬맹이다.”
 
 
 
 
 우리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춰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괄하던 두준이는 여학생이 건네는 상자를 받아들고는 조금 난처해했다. 그리고는 이내 여학생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학생도 가볍게 웃어 보이며 두준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버렸다.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준이가 저걸 왜 받는 거지. 한 번도 받은 적 없었잖아. 내가 싫어한다고 내 앞에서 자랑하지도 않았잖아. 지금은 그걸 왜 웃으면서 받는 건데?
 
 
 
 
“역시 꼬맹이 인기 좋네. 고백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
“야, 우린 가던 길마저 가....... 야! 용준형! 어디 가!”
 
 
 
 
 나도 모르게 뛰어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두준이 앞에 무릎을 짚고 지탱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두준이 여학생에게 받은 상자를 들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약이 올라 조금 더 두준이에게 다가가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들어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두준이의 얼굴에 약이 올라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무슨 일이세요. 형.”
 
 
 
 
 눈물을 참고 있는 내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저 상자만 손에 들고, 지금도 꼬박꼬박 형이라 부르며 자신에게 벽을 치는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상자를 뺏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상자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쿠키들이 놓여있었고, 내 행동에 두준이는 당황한 듯 상자를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평소에 이런 거 먹지도 않는 놈이 여학생이 주었다고 헤프게 웃으며 받아 준 녀석이 괘씸해 울면서 내 입속으로 넣어버렸다.
 
 
 
 
“어, 어어?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엉엉. 내가 지금 이깟 흑 쿠키 좀 먹었다고 흡 화내냐?! 개새끼얗.”
“......”
“흐읍. 너 이런 거 원래 처먹지도 않잖아!!! 왜 이런 거 받고 좋아햏? 헤픈 놈아.”
 
 
 
 
 억울함에 숫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버터쿠키는 너무나 부드러워 내 입안에서 부서져 버렸고, 눈물과 쿠키 부스러기와 끊어지는 음절까지. 나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엉엉 울었고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두준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제거 아닌데요.”
“...... 뭐? 이제 나한테 거짓말까지 하냐?”
“거짓말은 원체 형이 먼저 하셨죠. 그리고 그거 진짜 제거 아닙니다.”
 
 
 

 두준이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땅에 떨어진 박스를 가리켰다.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고는 박스의 뚜껑을 들어보았다. 그러자 뚜껑에는 너무나 명확하게 ‘기광 오빠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놀란 나는 그대로 굳어 두준이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두준이는 씩 웃으며,
 
 
 
 
“같은 학년 앤데, 제가 축구부인 거 알고 기광 선배께 전해달라고 해서요.”
“...... 왜 말 끕 안 했어......”
“말하기도 전에 형이 먼저 다 먹었잖아요.”
 
 
 
 
 상황이 정리되자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민망함에 땅바닥만 쳐다보고 우물쭈물하자, 두준이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반응이 없자, ‘쓰읍’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대로 두준이의 목을 답삭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두준이의 웃음과 체온에 안심이 되며 다시 한번 눈물이 났다. 그러자 두준이는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앞으로 또 거짓말 할 거야?”
“끕 다신 안 해.”
“좋아해. 형.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형을 좋아하지 않은 날이 없어.”
“...... 그거 아니잖아. 다시 해.”
“좋아해. 준형아.”
 
 
 
 
 
 
*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내 나이의 앞자리가 변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행히 기광이와 함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입는 교복. 명찰에는 초록색 바탕에 까만 글씨로 ‘용준형’이라 쓰여 있고, 내 앞에는 자주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윤두준’이라 쓰여 있는 명찰을 달고,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장미꽃을 들고 있는 내 애인이 보인다. 나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꽃을 전해주며 졸업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두준이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근사한 목소리로,
 
 
 
 
“졸업 축하해. 준형아. 사랑해.”
 
 
 
 
 라고 전해준다. 두준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내 마음속에 따뜻함이 퍼져나가 온몸이 간질거렸다. 그 간질거림에 웃으며 두준이에게 대답했다.
 
 
 
 
“우리 두준이. 아직도 고등학생이야? 언제 클래. 나 미성년자는 싫은데.”
“용준형. 오늘 자고 싶지 않다는 말을 돌려서 잘하네? 이따 밤에 보자.”
 
 
 
 
 아직 어린 내 애인이지만, 두준이와 함께라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날들이 더욱 즐겁고 행복할 것만 같다. 새롭게 시작하는 스무 살. 그 처음도 두준이와 함께였고, 나의 마지막 역시 두준이와 함께이고 싶다.

'짤막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준] Blossom  (4) 2018.06.24
[투준] 스커트  (0) 2018.06.19
[투준] 이불 밖은 위험해  (4) 2018.06.10
[투준] 봄날 아직 못다 한 이야기  (0) 2018.06.04
[투준] coffee 그 후  (0) 2018.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