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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글

[투준] 짝사랑

더블제이'-' 2018. 7. 4. 00:49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이 지독한 짝사랑의 끝을 생각해보곤 했다. 과연 그 끝에는 나는 네 곁에 서 있을지, 아니면 그저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남을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나의 짝사랑이 끝나지 않았기에.
 
 
 
 
 혼자만의 사랑을 간직한 체 그와 끊임없이 몸을 섞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서이고, 나는 그런 그의 옆이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처음 섹스를 요구하는 그의 모습에 허락했다. 이제는 그의 손짓, 눈짓만으로도 그가 원하는 자세를 잡았고 그는 거칠고,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물론 나에 대한 배려 역시 아주 조금이지만 미약하게 담아냈다.
 
 
 
 
 그런 그의 밑에서 이불을 꽉 쥐고 다물지 못한 입술 사이로 뱉어지는 소리에도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저 이렇게라도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그저 성욕의 상대로 여기는 그가 싫어지기는커녕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고,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만족과 행복은 나에게 조금씩 자만을 키워주었다.
 
 
 
 
 본격적으로 무더워지기 시작한 초여름의 어느 날. 집으로 가기 전에 맥주 먼저 마시자는 그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매일 학교에서 만나면서도 이렇게 단둘이 만나면 그저 설렘이 느껴져 사소한 것 하나까지 말하고 싶었다. 맞은편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의 앞에서 나는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그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글쎄. 난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그 순간 벌어져 있던 내 입술을 닫히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머릿속이 그저 하얗게 변하며 모든 사고 회로가 멈춰버렸다. 물방울이 맺힌 맥주잔의 손잡이를 가만히 매만지며 꺼질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 좋아해.”
 
 
 
 
 돌아오는 그의 목소리는 없었다. 작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그는 턱을 괴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 한번 입술에 호를 그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나에게 물었다.
 
 
 
 
“글쎄. 사람들이 너와 나 같은 사이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
“섹스파트너.”
 
 
 
 
 나는 그에게 섹스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않는 존재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을 품고 있던 마음을 원망하고, 사랑이라 생각한 머리를 원망하고, 마지막으로 고백을 전한 내 입을 원망했다. 더는 자리를 버티고 있을 수 없어 말없이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에도 그는 그저 묵묵히 맥주를 들이켰다.
 
 
 

 
*
 
 
 그 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나에게 섹스를 하기 위해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하였으나, 번번이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어느 순간 그 연락마저도 끊겼다. 지독한 짝사랑의 끝이라 생각하자며 나를 끊임없이 다독였다. 그리고 소홀했던 학업에도 충실히 하고자 했다. 그와 같은 전공이었지만 나는 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망을 가버렸다. 그와는 제발 마주치지 않길 매일같이 기도했다.
 
 
 
 
 그날도 역시 전공에 필요한 서적을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문 뒤로 자그마한 포스트잇이 보였다. 거기에는 깔끔한 글씨체로 ‘왜 연락도 안 되고 얼굴 보기도 힘들어. 집으로 와.’라고 적혀져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그의 존재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열린 사물함의 문을 닫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종강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고, 나는 그저 이 모든 시간에 그를 만나지 않길 바라며 피하는 것뿐이었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고, 나의 수많은 생각은 내 발목에 족쇄를 채워놓았다. 강의실과 가까워질수록 깊은 한숨이 나왔다. 사물함을 열어보니 또 다른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 이거 못 봤나. 왜 집에 안 왔어. 연락해.




 그를 닮은 간결한 글씨체가 자꾸만 내 시선을 붙잡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에 볼일을 마치고 포스트잇이 팔랑거릴 정도로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저 행복함에 취해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던 착각에 대한 창피함과 자만감. 그리고 그 사랑을 털어놓은 어리석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들어와 나를 혼란스럽고 또 끊임없이 괴롭혔다. 윤두준과는 같은 선에서 출발할 수 없는 위치였다. 그저 용준형이 간직한 사랑은 끝이 보이지 않았던 짝사랑. 단 그뿐이었다. 이제 와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사랑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종강을 기다리며 수업 전 사물함을 열 때마다 윤두준의 향기가 가득한 포스트잇은 하나둘씩 늘어가 어느새 문 안쪽을 빼곡하게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누구보다 빠르게 강의실을 빠져나와 책을 정리하는데 누군가 내 손목을 잡고는 그대로 잡아당겼다. 갑작스레 당겨지는 힘에 놀라 바라보니 무표정의 윤두준이 서 있다.
 
 
 
 
 잡힌 손목에서부터 미약한 아픔이 느껴져 빼내려고 하자, 조금 더 힘을 주어 강하게 쥐어온다. 그리곤 그대로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근처 커피숍을 들어갈 때까지도 잡혀있던 손목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고, 마음속엔 그 뜨거움에 데여 자국을 남겼다. 다시 한번 윤두준이라는 이름을.
 
 
 
 
  무작정 나를 데려온 패기치고는, 둘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답답함에 커피로 입술을 적시려는 순간, 두준이 입을 뗐다.
 
 
 
 
“왜 연락이 없어. 집에 오라고 해도 안 오고. 섹스 안 한 지도 오래됐잖아.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듣는 윤두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근사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다정했다. 그리고 그 눈빛에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잔인하게도 나를 또 기대하게 했다. 대답이 없자 다시 나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얼굴 보기도 힘들잖아. 진짜 무슨 일 있어?”
“...... 그게 왜 궁금한데.”
“왜 궁금하냐니. 우리 준형이 왜 이렇게 날카로워.”
“.......”
“용준형. 진짜 무슨 일 있어?”
“...... 그냥 허리짓하고 싶어서 부른 거라고 해. 그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지금보다.”
“안 그래도 너랑 연락도 안 되고 그래서 다른 애 불렀었는데 서질 않더라.”
“....... 그게 지금 할 소리냐?”
“용준형 아니면 안 되나 봐.”
 
 
 
 
 아무 의미 없는 대화의 랠리가 계속해서 진행되자 점점 두통이 밀려왔다. 제 앞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두준이를 보고 있자니, 그에게 나는 정말 섹스파트너뿐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어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들고는 말라버린 입안으로 단숨에 쏟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은 내 몸짓을 따라 끊임없이 따라왔고, 그 시선에 숨이 막혔다.
 
 
 
 
 가방을 들고 그의 곁을 지나가자, 어깨너머로 어디 가냐는 질문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저 말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
 
 
 그날을 기점으로 미묘하게 무언가 변화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울릴 일이 없는 핸드폰은 매시간 새로운 알림을 알리는 진동이 끊임없이 울렸다. 처음에는 피싱인가 싶어 무시하였는데, 온종일 울리는 핸드폰에 내가 지쳐 확인하자 놀랍게도 모두 두준이었다. ‘일어났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일상의 사소한 질문이 적힌 메시지들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도 날아왔다.
 
 
 

 사물함을 열어보면 새로운 포스트잇에 자주 갔던 카페의 이름과 내가 좋아했던 디저트들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먹으러 가자며 시위를 했다. 이제 겨우 내 발목에 채워놓은 족쇄를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윤두준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붙어있는 포스트잇 위에 답장을 썼다. ‘그만해.’라는 단 세 글자를 남겨놓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두준이와의 술래잡기는 종강을 앞둔 시험 기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얼른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눈앞에 두준이가 보이지 않으면 또다시 복잡해진 내 마음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전공 시험의 답안지를 제출하고,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지난 시간 동안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이제는 한 톨도 남김없이 떠나보낼 사랑에 대한 미련과 그 모든 감정을 털어내기 위한 조촐한 술자리를 갖고자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맥주를 잔뜩 샀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목을 자극하는 탄산과 마지막의 느껴지는 쌉쌀한 뒷맛이 느껴지자 나의 짝사랑과 너무나 비슷해 웃음이 났다. 순간의 부드러움에 속아 계속해서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하나둘 마시다 소파 위에서 자꾸만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자 두준이의 이름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울린 전화가 부재중으로 전환이 되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하나같이 ‘윤두준’의 이름으로 가득한 알림창이 반짝인다.
 
 
 
 
 하나씩 확인을 하니, ‘언제 갔는지, 왜 말도 하지 않고 갔는지, 시험은 어땠는지, 방학 때는 무엇을 할 건지.’ 등의 사소한 이야기였다. 내 입술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전원 버튼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시선을 돌리자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보인다.
 
 
 
 
 어느덧 6월 말이 되었다. 날씨는 여름이 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나타내듯 더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제 곧 두준이의 생일이 다가온다. 생각해보니 작년 두준이의 생일엔 비록 몸뿐이었더라도 함께 보냈었다.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알기에 허공에 맥주잔을 부딪치며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윤두준.”
 
 
 
 
 
*
 
 
 시간은 정말이지 잘도 흘러간다. 그동안 두준이도 전에만큼은 아니지만 하루에 몇 차례씩 꾸준히 연락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예전만큼 동요하지 않았고, 눈에서 보이지 않으니 크게 보고 싶단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모든 것을 잊고 바쁘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토닥여주는 기분이었다.
 
 
 
 
 문득 달력을 보니 벌써 7월 3일이다. 그래도 아직 마음 한구석에서 빠지지 못한 두준이의 생각에 슬쩍 웃고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집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울리는 소리에 의아함을 갖고 문을 열자,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는 두준이의 모습이 보인다. 열린 문을 다시 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굳어있는 내게 두준이 말을 건넸다.
 
 
 
 
“계속 밖에 이렇게 세워 둘 거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지난번 커피숍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자 두준이 잘 지냈냐 물었다. 질문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자, 내 눈앞에 본인이 가져온 케이크 상자를 보여준다. 내민 상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두준이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건넸다.
 
 
 
 
“너 여기 케이크 좋아하잖아. 같이 먹으려고 사왔어.”
“......”
“먹기 싫어?”
 
 
 
 
 대답이 없는 나를 보곤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을 한 윤두준이 내 앞에 보인다. 왜 네가 그런 표정을 하는 건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제 겨우 마음을 접고 내 생활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은 한숨이 나왔다.
 
 
 
 
“윤두준. 나는 너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지난번 커피숍에서 너가 그렇게 가버리고 생각을 했어. 섹스할 때 말고는 다정하게 부른 적도 없고, 너에 대한 생각을 한 적도 드문 것 같더라. 그런데 너가 그렇게 가고 나니 마음이 이상한 거야.”
“.....”
“자연스레 용준형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더라. 평소에는 뭘 하는지. 나를 생각하는지. 잠은 제때 자고, 밥은 먹는지 등 정말 사소한 것들이.”
“...... 네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서 일시적으로 생기는 현상이야. 크게 마음 두지 마.”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두준이는 대답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숨 막힐듯한 적막이 싫어 내 손톱을 괴롭히고 있을 때, 두준이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는 내 손을 잡았다. 그의 행동에 흠칫 놀라 손을 빼려 하자, 더욱 힘을 주어 내 손을 감싸 쥔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으로 가지고 가 손등에 입을 맞춘다.
 
 
 
 
“준형아. 이제 몇 분 후면 나 생일이야.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섹스파트너 말고, 네 곁에서.”
 
 
 
 
 들려오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두준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시선이 마주친 두준이는 그저 웃으며 내 머리를 쓸어내리다 어깨를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품에 안겨있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두준이는 귓가에 속삭였다.
 
 
 
 
“12시 넘었는데 생일 축하한다고 안 해줘?”
“...... 생일 축하해.”
“앞으로 내가 잘할게. 준형아.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마.”
 
 
 
 
 그렇게 윤두준의 생일인 7월 4일. 나는 내 짝사랑의 완벽한 끝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과 손을 마주 잡고 사랑을 약속했다. 나의 사랑 이야기는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여기 지금 함께 누워있는 침대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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