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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글

[투준] 악몽

더블제이'-' 2019. 2. 10. 17:22






 분명히 나는 잠이 들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펼쳐진 그저 새까만 암흑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기 위해 목청이 터질 만큼 소리를 지르고, 다른 이를 찾아다녔지만, 이내 곧 이곳에 존재하는 피조물은 나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미친놈처럼 웃음부터 나왔다.
 
 
 
 
“이 꿈 오랜만이네. 잊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나타났나?”
 
 
 
 
 내가 말을 한들, 꿈속이라 들어줄 이 하나 없었다. 그저 중얼거리며, 익숙한 듯 자리에 앉았다. 얼른 이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Rrrrrrr
 
 
 
 
 귓가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오늘만큼 이 알람 소리가 반가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꾸는 악몽이라 인지하였어도, 한동안 머릿속이 멍한 느낌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만큼 이 지독한 악몽은 나를 끊임없이 찾아왔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처음으로 이 악몽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고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손을 쓸 도리도 없이 그렇게 악몽은 나를 찾아와 깊은 어둠 속에 가둬버렸다. 깨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꿈에서처럼 무릎을 한껏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한동안 그저 숨죽여 울었다.
 
 
 
 
 그 뒤로도 같은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마다 슬프고, 마음 한구석이 아파져 왔다. 그리고 이 세상에 피조물은 정말 나 하나인 것 같아 괜스레 서글퍼졌다. 익숙해질 만도 한 이 악몽과 느낌은 빌어먹게도 친해질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한동안 이 꿈을 꾸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을 보니, 요즘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나 보다. 굳이 이유는 찾지 않아도 단번에 떠올랐다. 같은 회사. 그나마 동기라는 번지르르한 이름으로 그나마 옆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바로 윤두준 때문이었다.
 
 
 
 
 다부진 굵은 선을 가진 얼굴에 쌍꺼풀은 없지만 제법 큰 눈. 날렵하게 잘빠진 콧대와 말을 하거나 물을 마실 때 울렁이는 목울대까지. 그 모든 것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한 그런 사람이었다. 자리에서 간략한 자기소개를 하는 그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입사 첫날부터 제대로 망신당할 뻔했었다. 다행히 옆에 계셨던 분께서 팔꿈치로 나를 슬쩍 밀어주셔서 그에게 고정되어있던 시선은 해방되었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소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만큼 금방 친해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입사 동기, 동갑내기. 겨우 이런 것만으로 공통점을 찾았냐 타박을 할 수도 있지만, 두준이와 내가 동갑이라는 사실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 우리는 서로의 생각보다 더욱 의지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더욱 큰 위안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위안이 되냐.’라고 물어본다면, 그 즉시 측정을 하여 ‘이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라고 명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예를 들어보자면 오늘 같은 경우이다. 예고도 없이 파고들어 온 악몽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모니터 안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시선은 이내 깜빡이는 창으로 모아졌고, 확인하니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윤두준의 메시지였다.
 
 
 
 
- 오늘 잠 못 잤어? 왜 이렇게 멍 때리고 있어.
 
 
 
 
 잠들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웃음이 났다. 여기서 웃어버리면 두준이 민망해질까 봐 조용히 손을 올려 입을 가리고 웃어 보이곤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 새벽에 좀 뒤척였어. 많이 티 나나?
 
 
 
 
 두준이 보여주는 이런 사소한 관심이 두준이에 대한 내 마음을 포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차라리 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나 역시 깔끔하게 포기할 텐데. 쉽지가 않았다. 
 
 
 
 
 
 
*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악몽은 단 하루 동안만 찾아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매일 연속으로 찾아와 나를 더욱더 깊은 어둠 속으로 이끌고 갔다. 오늘은 평소에 나를 덮치는 악몽과 조금 달랐다. 저 멀리 윤두준이 내 앞에 서서 웃으며 무어라 이야기를 건넸다. 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바라보고 있는 입 모양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 조심스레 두준이의 앞으로 다가가자 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 발 한 발 내디딘 걸음은 어느덧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만큼 가까워졌고 그만큼 가서야 나는 두준이의 입 모양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니가 나를?’
 
 
 
 
 다섯 글자조차 넘지 않는 이야기는 내 가슴을 후비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어둠이 덮쳐왔다. 이 숨 막히는 어둠에서 벗어나려 하였지만, 움직이긴커녕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버거웠다. 그 자리 서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렸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오늘만큼 이 악몽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처음 이 꿈을 꾸었을 때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군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에게서도 철저히 외면당하는 기분이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애처롭고 슬펐다.
 
 
 
 
 오늘은 스스로 거울을 봐도 흠칫 놀랄만한 몰골이다. 단 하루 만에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스쳐 지나가도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까지. 지금 용준형은 침울함. 그 자체였다. 나 자신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심지어 회사에서 나를 마주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나의 안부를 물었다.

 
 
 
 두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에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두준이는 하던 인사까지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나 따갑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를 향해있던 시선이 거둬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두준이를 바라보면 그대로 내 마음을 전할 것만 같았다. 듬직한 동기라고 믿고 있는 두준이에게 내 마음이 편해지자고 짐을 덜어주는 것 같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신 차리자. 용준형. 준형아. 정신 차려. 그냥 꿈일 뿐이야.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얼른 퇴근해서 집에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날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5시 2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퇴근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힘이 들었다. 가끔 고개를 들었을 때마다 마주치는 두준이의 시선도 오늘만큼은 피하고 싶어 일부러 모르는척해가며 피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낮은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바라보자 작은 창이 깜빡인다.
 
 
 
 
- 오늘 무슨 일인데. 끝나고 술 한잔하자.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은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결심한 듯 빠르게 답장을 써 내려갔다.
 
 
 
 
- 그러자.
 
 
 
 
 
 
*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술자리는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우리가 마신 술병은 고스란히 쌓여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유독 말없이 그저 술잔만 기울이고 있으니, 두준이도 그 이유가 궁금했나 보다. 듣기 좋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준형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응? 아무 일 없었는데?”
“거울로 네 얼굴 보고 이야기해. 아침부터 기운도 하나도 없고. 무슨 걱정 있어?”
 
 
 
 
 턱까지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이 뜨거워 열이 오르는 듯했다. 그리고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그저 눈만 굴리다 이내 입속으로 솔을 털어내며 조용히 ‘꿈자리가 별로여서.’라고 흘리듯 말했다. 그러자 두준은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듯 턱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 별건 아닌데...”
“이렇게 걱정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별거 아니긴. 얼른 얘기해봐.”
 
 
 
 
 이렇게 두준에게 처음으로 나의 악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빈도수 높게 꾸는 악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엇비슷하게 꾸는 악몽이라고 말하자 두준은 자신이 마치 그 느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말없이 술잔을 들어 우리는 건배를 했다. 입속으로 술을 넘기려는 순간 할 말이 있다는 듯 두준의 입술이 열렸다.
 
 
 
 
“네가 있는 어둠은 내가 만든 어둠인가 보다.”
 
 
 
 
 아직 미미하게 입속에 남아있는 술을 넘기고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두준을 바라보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술을 털어 넣고 다시 한번 입술을 열었다.
 
 
 
 
“용준형. 너 혼자만 남겨진 것이 아니라, 너만 들어와서 채워진 곳이라고. 그곳은.”
 
 
 
 
 귓가를 타고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라 바라보자 나와 시선이 마주친 두준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는
 
 
 
 
“앞으로 또 그런 꿈꾸면 ‘아, 윤두준 세상인가 보다.’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상하게도 두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세차게 요동쳤고, 앞으로 같은 악몽을 꾸어도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잔을 잡은 내 손도 약간은 뜨거워졌다. 아마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 윤두준 마음 역시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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