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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랑
문이 열리자 경쾌한 종소리가 맞이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윤두준의 근사한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벌써 두준이를 알고 지낸 지도 8년.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옆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지냈다. 물론 두준이는 나를 그저 친구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두준이를 바라보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곤 티가 나지 않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자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미약한 진동이 울렸다.
- 언제 오냐? 커피 다 식겠다.
두준이의 메시지를 보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두준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한걸음에 옮겨 손가락으로 노크를 했다.
- 똑똑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윤두준은 밝게 웃으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웃지 말라고. 가슴 떨리니까
“오래 기다렸냐. 미안 교수가 붙잡고 안 놔줬어.”
“미친. 연구실에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지랄이냐. 아 진짜 별로다.”
“그래도 진짜 도망치듯이 나왔으니까 입 좀 집어넣고.”
“용준형 마시라고 산 커피가 죄다 식었겠다.”
“괜찮아. 어차피 뜨거운 것도 잘 못 마시는데. 그나저나 넌 또 핫초코 마시냐. 오늘 커피 마셨어?”
“어. 종일 물리게 마셔서 지금은 커피 생각도 없고, 그냥 단 거 마시고 싶어서.”
조금 식은 커피를 입안에 넣자 쌉쌀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가끔은 두준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대신하는 생각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 미칠 듯이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내 마음과 머릿속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와, 벌써 12월이 반이나 지나갔다. 준형아. 나 뭐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금방 지나가냐.”
“그건 나도 그래. 올해에는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던 거랑 윤두준 만난 것뿐이 없는데.”
“야, 나 만나는 게 왜 그래서 싫었냐?”
“에이, 좋아서 그렇지. 좋아서.”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던 두준이는 손을 들어 내 머리통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듯이.
“다음 주에 집에 올 거지?”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 진짜 빠르다. 연구실 끝나면 바로 갈게.”
“그냥 그날 하루 안 가면 안 되냐.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마음대로 용준형도 못 보고.”
말은 잘한다.라며 두준이를 향해 픽 웃어 보이자 어깨를 으쓱이며 진짠데.라며 반문을 한다. 그 모습이 또 기분 좋아 웃고 있던 내 모습은 바보 같아 보였을 거다.
12월이면 두준이와 항상 함께 보냈다. 19일 내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와 함께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 정말 이른 송년 파티를 함께 지냈다. 그렇게 벌써 7번의 파티를 함께 보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전구에 불을 켠 다음 케이크를 준비했다. 항상 초는 2개를 준비하여 케이크에 먼저 하나를 꼽아 나의 생일을 축하하며 초를 껐고, 또 다른 초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함께 초를 껐다.
케이크를 자르며 한 입 베어 물면 꼭 두준이는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냐고. 소원은 말하는 거 아니라면서 숨겼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나의 소원은 똑같았다.
- 윤두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
오늘만큼은 연구실에 양해를 구하고 두준이의 집으로 향했다. 전날 프로젝트로 인하여 제대로 잠들지 못하여 몸은 피곤했지만 두준이를 본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가 준비할 틈도 없이 본인이 준비하였으니, 몸만 오라는 연락에 미안함과 전부터 가지고 싶었다는 게임 CD를 가지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거실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장식들과 우리가 먹을 예쁜 케이크, 술 등이 펼쳐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소파에 널브러져 눈을 감고 있는 두준이의 옆에 걸터앉아 가방을 내려놓고는 살짝 헝클어진 두준이의 앞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윤두 자냐. 이거 혼자 준비하게 해서 미안해. 고생했어.”
정말로 잠이 들었지는 내 손길에 미동도 없는 두준이의 모습에 머쓱해져 손을 내리려고 하자 두준이는 내 손을 잡고 ‘시원하다.’라는 말과 함께 자기 이마에 가만히 가져다 놓았다. 그리곤 눈을 뜨고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일찍 왔네. 오늘도 늦게 올 줄 알았는데.”
“오늘 교수님 피해서 도망 나왔어. 윤두준이 또 혼자 준비 다 했다고 하니 미안하고 하고.”
“괜찮아. 이게 뭐 큰일이라고 얼른 트리 먼저 꾸미고 케이크 먹자.”
예쁜 상자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트리 장식을 꺼내어 하나씩 트리에 매달아 놓았다. 가끔 두준이가 장난친다고 내가 걸어놓았던 것을 다시 빼놓기도 하였지만. 트리 맨 위에 별을 달고 전원 스위치를 켜니 트리에 감아놓은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 순간만큼은 굉장히 설렌다. 올해에도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보는 사람이 두준이라는 사실에 이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고 설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를 꺼내어 초에 불을 붙인 후, 두준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를 불러주는 근사한 두준이의 목소리에 그리고 8년 동안 변함없이 내 곁에서 생일을 챙겨주는 두준이의 모습에 내 가슴은 눈치도 없이 요동치고 있다.
“얼른 소원 빌어.”
근사하게 들려오는 두준이의 목소리에 두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 윤두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감겨있던 눈을 뜨고 초를 후. 하고 끄자 두준이가 손뼉을 치며 축하해준다. 괜스레 쑥스러운 마음에 콧등을 긁적이며 고맙다고 이야기하자 내 앞에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뭐냐는 물음에 열어보라고 재촉한다. 사실 두준이에게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선물을 받으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내 곁에서 축하해주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 더 컸는데 이렇게 선물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놀라기도 했고 의문이 들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심플한 모양의 반지가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두준이를 바라보니 이내 두준이는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며, 자신의 손을 눈앞에 보여주었다. 두준이의 행동을 따라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니 두준의 손가락에는 내가 들고 있는 반지와 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더욱더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이번엔 맹하니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좋은 건 아니야.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었어. 좋아해 용준형. 8년 전부터 항상. 너를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어. 아, 거절해도 돼. 부담.... 주려고 한 건 아니니까.”
“.... 야. 진짜.... 이게 뭐냐....”
떨리는 내 목소리를 두준이는 거절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이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야야, 용준형. 나 괜찮아. 케이크 먹을래? 배고프지?”
“야... 윤두준... 진짜...”
“아... 진짜 부담 주려고 한 거 아냐. 어? 미안해 준형아. 얼른 케이크 먹자.”
“너 이새끼...”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더는 참지 못하고 두준이를 끌어안아 버렸다. 그러자 두준이는 당황한 듯 움찔거리다 이내 내 등을 가볍게 감싸고는 미안해.라고 하며 토닥여주었다.
“.... 윤두준. 내가 먼저였는데.... 또 먼저 나한테 다가와 주었어.”
“어?”
“멍충아, 왜 말을 못 알아들어.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좋아해 윤두준. 정말로.”
등을 토닥이는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멈춘 뒤 급하게 두준이는 안겨있는 내 어깨를 잡고 살짝 품 안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야. 용준형. 지금 뭐라고? 다시 말해봐.”
“좋아해. 좋아해 두준아.”
두준의 눈을 바라보며 상자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내 그대로 내 손가락에 낀 후 무슨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준의 목을 끌어안고 놀라 멍한 윤두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윤두준.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너는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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