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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글

[투준] 간지러운 마음

더블제이'-' 2018. 7. 25. 17:14

간지러운 마음

 

 

W. 이상&더블제이

 

 

 

 

Part 1. 준형ver.

 

 

 

 

 

 

왠지 모를 것으로 내 마음이 간질거림을 느끼게 되면 무엇보다 불안감이 먼저 심장을 찔렀다.

그 간지러움이 혹시나 커져 마음을 움직일까, 흘러나오는 사랑 노래, 사랑 소설들을 피했다.

그 간지러움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낙인찍힐까, 그래서 사랑이라는 우물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목이 죄인 채 허우적거릴까.

감정이 점점 고조되어 머릿속에 멋대로 피어오르는 불길한 서운함과 배신감에 깊이 다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았다.

불안이라는 장벽으로 간지러움을 억누르고 억누르는 것이다.

나조차 더 이상을 알아챌 수 없도록.

 

 

 

-

 

 

 

그와 친해진 계기는 자연스럽고, 이상할 것 없었다.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회사에 입사동기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른 부서로, 다른 팀장님 아래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MT마냥 간 신입연수에서 같은 부서로 배정되어 부장님과 이야기 하는 중,

유난히 낯을 가리는 내게 먼저 안부를 물었다.

 

-안녕하세요. 준형씨. 앞에 앉아도 될까요?

-, . 앉으세요. 죄송하지만 성함이...

-, 윤두준입니다. 89년생이에요.

-저도 89예요! 와 동갑이다. 반가워요.

 

모두에게 사랑받을 성격이었다, 그는. 털털했으며 세심 했으니까.

보통 그런 사람들은 두루두루 친해지느라 옮겨 다니기 바쁜데, 꼼지락 거리기만 하는 내 옆에 붙어 유난히 나를 챙기는 그가 꽤나 든든했다.

그렇게 끝나도 매일 부서에서 보고,

가끔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가 되었겠지만 계속해서 내 곁에 있는 그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돌았다.

한 구석에 안개마냥 피어오르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웃음이 났다.

 

 

 

-

 

 

 

- 점심!”

 

 

하필 어제가 목요일이라.

목까지 차오른 무언가를 겨우 삼켜내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난 못 먹어...”

 

 

고개를 젓기도 벅차, 낮게 읊조리자 그의 밝은 표정이 금세 굳어진다.

 

 

어디 아파? 감기 걸린 거야?”

 

 

걱정은 고맙지만 한 여름이야. 걸리는 게 이상한 거라고.

다정스레 머리에 닿은 그의 손바닥을 떼어내고 말라가는 입술을 적셨다.

 

 

숙취...”

...”

 

 

안타깝다는 듯이 변하는 표정이 뭔가 웃겨, 푸스스 웃음을 터쳤다.

그리고는 책상에 머리를 데고, 여전히 내 옆에 서있는 그를 올려다봤다.

 

 

점심 먹어. 배고프겠다. 나는 조금 자면 나을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아프다고 네가 안 먹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 말에도 한 없이 내 옆에 서서 머뭇거리는 그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문 쪽으로 밀었다.

 

 

, 빨리. 내 몫까지 먹어.”

 

“... 올 때 죽이라도 사 올게.”

 

아 됐다니까 그러네.”

 

걱정 돼서 그래. 알았지? 쉬고 있어. 금방 먹고 올게!”

 

 

천천히 먹으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뛰어나가는 그에 한숨을 내쉬었다.

또 체하려고.

유난히 숙취가 긴 체질에 이렇게 회식 다음 날이면 앓아눕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저렇게 뛰어나가기 바빴고.

언제부터인지 나를 챙긴단 명목으로 밥을 빨리 먹다가 그가 앓아눕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왠지 불안한 느낌에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니, 급히 어지러워지는 머릿속에 속이 울렁거려 다급히 입을 막았다.

 

 

 

-

 

 

 

기어이 숙취가 날아간 게 토요일 오후였다.

비척비척 일어나서 벌써 4분의 1이나 날아간 주말에 절망했다.

맛있는 거나 시켜 먹자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집어 들자, 화면 한가득 떠있는 안달복달하는 문자에 한숨을 내쉬었다.

 

-준형아 몸은 괜찮아?

-준형아?

-내가 죽 사서 갈까?

-아직 자는 건가...

 

등등. 얘는 내가 숙취가 아니라 합병증을 앓고 있는 걸로 아는 건가.

묘하게 과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고, ‘괜찮아.’ 하며 문자를 보냈다.

뭐 먹을까.

고생하느라 두준이가 사다 준 죽 밖에 먹지 못해 괜한 보상심리가 들었다.

치킨을 두 마리나 시키고는 전화 주문 하려할 때, 또 무언가가 화면 가득 채웠다.

 

 

여보세요?”

-! 이제껏 잔거야?

어어. 역시 숙취에는 잠이지.”

-아이씨 더 아픈가 걱정했네.

뭔 걱정을 시도 때도 없이 하냐, 너는. 다 그렇게 걱정하다가 네가 일찍 죽겠다.”

-... 다른 사람은 걱정 안하지.

?”

-너만 걱정한다고 멍청아.

“... 내가 아무리 숙취가 심해도 그렇지 무슨! 이상한 말 하지 마. 놀랐네.”

 

 

핸드폰으로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에 매말라가는 목구멍을 축였다.

나를 매번 챙겨주는 그였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점점 엄습하는 불쾌한 불안감에 헛숨을 들이켰다.

 

 

-...준형-

! 치킨 왔다! 나 저녁 먹는다! , 너도 먹어! 월요일에 보자!”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는 다시금 알싸하게 아파오는 머리를 짚었다.

설마하는 생각이 온 머리를 뒤덮었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상처럼 스쳐지나 간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게 나와 우리 관계를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진동을 무시하고는 눈을 가렸다.

 

 

제발...”

 

 

 

-

 

 

 

진실이지 않았으면 하는 쪽으로 흘러가던 생각을 겨우 끌어와도,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듯 바로 흘러가기만 했다.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을 힐끗 보니 아직 비어있는 자리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잠시잠깐 안도해도 곧 올텐데.

점점 가까워져 가는 출근 시간에 머리를 짚었다.

 

 

준형아 머리는 좀 어때?”

 

 

올 것이 왔구나.

내 어깨를 짚으며 물어오는 그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안색이 안 좋은데?”

 

 

또 다정스레 머리로 와 닿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피했다.

그러자 당황했던 그가 어깨를 토닥인다.

 

 

걱정했는데 왜 문자 안보냐.”

 

그냥... 바빠서...”

 

걱정 하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지?”

 

 

장난스레 말했지만 왠지 진심이 가득 묻어나는 말투에 눈을 꾹 감았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그가 친구를 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다정하고 간질거려,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미리 알아내고 밀어낼 수 있을거라고 자신했던 것인지.

바로 코 앞에 닥친 상황은 부정하려 해도 사랑과 같은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니야. 얼른 가서 일이나 해라.”

 

너 때문에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어휴-”

 

...러냐.”

 

 

어색함을 알아챘는지 뒷목을 긁적이던 그가 내 머리를 헤집고는 자리로 간다.

의자를 끌어내는 소리가 나고서야 막혔던 숨을 터트렸다.

나 자신이 답답했지만 점점 불쾌해지는 공기에 목을 죄는 넥타이를 잡아 풀었다.

 

 

 

-

 

 

 

 

용준형씨- 커피요-”

 

 

장나스레 커피를 건내는 그에 어색하게 받아들었다.

옆에 바싹 붙어, 내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는 그에 다급히 시선을 옮겼다.

 

 

 

- 빨리 주말 왔으며 좋겠다-”

 

“....”

 

주말에 뭐 할 거야?”

 

그냥... 그냥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럼 영화 볼래? 같이 영화보고 밥 먹자.”

 

 

그의 얼굴에 가득 녹아 있는 기대감에 숨이 턱 막혔다.

강아지 같은 눈빛에 귀가 달아오르는데, 쓰디쓴 약을 목구멍에 밀어넣듯 자꾸만 역류하려한다.

필히 가로막은 장벽 때문이리라.

지레 짐작하게 되는 좋지 않은 과정과 결말에 자꾸만 피어오르는 간지러움을 막고, 밀어내려 용을 쓴다.

 

 

”... 나 생각해 보니까 본가에 내려가야 해서...“

 

, 그러냐? 그럼 다음에 보자.“

 

...“

 

그리고 핸드폰 좀 봐라. 장식이냐.“

 

 

장난스레 말하는 그의 얼굴에 서운함이 서려 있었다.

문자 봤지. 카톡은 읽으면 1이 사라지니까 보지도 않았고.

네 다정스럽고, 기대가 가득 담긴 문자에 답장을 할까봐 보자마자 바로 꺼버렸었지.

 

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의 표정이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했다.

뭐지 하고 가만히 있을 때, 내 어깨로 감기는 그의 팔에 온몸이 굳었다.

 

 

눈앞에 두고 지켜보든가 해야지. .“

 

 

잔뜩 부끄러움이 서린 말투에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쳐냈다.

그러자 놀란 표정이 내게 돌아온다.

나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떠 그를 바라봤을 때, 서운함이 섞인 감정을 겨우 수습하는 게 보였다.

 

 

, 아무튼 시간 좀 내라고.“

 

...“

 

같이 퇴근하자. 먼저 가지마.“

 

...“

 

 

 

-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바랐던 감정은 거짓이었다는 걸 그의 시선이 증명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이상한 걸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의 시선은.

하루 종일 나를 태울 듯 바라보는 시선은 그가 내 곁에 있을 때 열기를 더했고, 내가 그를 밀어낼 때 서운함을 한 가득 품었다.

그가 남자라서가 문제인 게 아니다.

사귀고 난 후가 물 보듯 뻔해서. 그의 작은 것 하나하나에 나는 불길한 서운함을 느낄거고,

배신감이 깊어져 결국 그와 나 모두를 다치게 할테니까.

그럼 또 그 상처에 쌓여 버텨내지 못한 새 가슴에 지레짐작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회사 같은 부서이니.

한 명이 버티다 못해 튕겨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내게는 두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 나 이거 모르겠는데 좀 알려주라.“

 

 

떨리는 손으로 어깨를 감싸는 어색한 손에 입술을 물었다.

한숨을 쉬고 그 손을 쳐냈다. 바짝 놀라는 그가 느껴지고 그런 그에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수한테 물어봐. 사수는 왜 있냐.“

 

”... 아 그러지 말고- 간단한 건데 알려주면 어디 덧나냐?“

 

”... 더워. 저리가.“

 

 

너무 퉁명스러웠나.

안 봐도 내 뒤에서 굳어 있을 그에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를 위한거라고, 네 마음이 잠시 사그라들 때까지만 이런 거라고 죄책감 젖은 마음을 달랬다.

 

 

 

-

 

 

 

그를 지치게 하면 알아서 지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그때만 서운함을 내비치는 그는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가 그렇게나 좋은 거야 아니면 그만큼 갖고 놀고 싶은 마음이 큰 거야.

불안은 그를 향한 불신과 불쾌로 변질되었다.

사그라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행동은 점점 과해졌다.

 

 

- 배고프다- 볼 말랑말랑 한데 한번 깨물어 봐도 되냐? 찹쌀떡-“

 

두준아.“

 

 

그를 낮게 부르자 점점 다가오던 고개가 뒤로 물러난다.

 

 

?“

 

저녁때 시간 돼?“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 금방 화색을 띄었다.

 

 

저녁? 당연하지.“

 

”... 그럼 퇴근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

 

그래! 바로 나가자!“

 

 

당연하게 긍정적인 대답을 내뱉고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이야, 아싸- 하며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한다.

그 아이처럼 웃는 모습에 간지럼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

 

 

 

-미안 나 이 대리님이 잠깐 얘기 좀 하쟤... 먼저 가 있어! 뛰어갈게!

 

먼저 포장마차로 오자마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왠지 그의 반응과 표정이 눈에 선해, 술 기운 없이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연달아 4잔을 들이키자 소주 반 병이 비워졌다.

또 한 잔을 따라 들이키려 할 때, 큰 손이 소주병을 가로챈다.

 

 

누가 혼자 마시고 있으래.“

 

 

장난스런 타박이 섞인 소리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앞에 앉은 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무슨 일 있어?“

 

 

조심스레 물어오는 그에 입술을 꽉 물었다가 그에게 술잔을 건냈다.

엉거주춤 잔을 받아드는 그에 술을 따르고, 내 잔에도 다시 술을 채웠다.

다시금 입에 털어 넣으려 할 때, 내 술잔을 잡아당긴 그가 뭔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탁- 하고 내려놓는다.

처음 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

 

 

왜 그래 뭔 일인데?“

 

”...“

 

힘든 일이라도 있어?“

 

”...“

 

준형아. 말을 해-“

 

두준아.“

 

 

그의 눈에 일말의 불안함이 스쳤다.

 

 

”... 네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 ?“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이나 생각하던 그가 입술을 꽉 문다.

 

 

”...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어떻게 볼지도 걱정되고...“

 

. 남들 시선이 걱정돼?“

 

 

약간의 헛웃음만이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데 그 이상은 조금...“

 

 

결국 입에서 나온 말에 눈을 꽉 감았다.

좀 이른 시간의 포장마차에는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의 굳어가는 표정과 함께 깨졌다.

 

 

나는 그래도 조금은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 미안.“

 

내가 어리석었네.“

 

미안해, 두준아...“

 

아니야. 네가 정말 그러면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한 거잖아. 힘들었겠네. 미안. 너는 아무 의미 없는 호의였는데.“

 

 

빠르게 내뱉는 그에 고개를 푹 숙였다.

 

 

”...“

 

먼저 일어날게. 앞으로는 네가 그렇게 느낄 일 없을 거야. 미안했다.“

 

두준아.“

 

 

그를 급하게 불렀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붙잡지 마.“

 

”... 미안...“

 

”...“

 

 

 

-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그의 가방과 겉옷에 숨을 들이켰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보이지 않는 그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탕비실로 향했다.

머그잔을 손에 꽉 쥐고는 그깟 술을 마셨다고 울렁거리는 속에 목을 매만졌다.

이런 날은 꼭 그가 더 아픈 듯이 행동했는데.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불쑥 탕비실로 나타난 그는 나를 보고 멈칫하더니 말없이 인사를 건냈다.

그에 한 없는 어색함이 맴돌아, 그저 손에 쥔 머그컵을 만지작거렸다.

이대로는 안돼겠다. 내가 되돌려 놓았다고 생각한 우리의 사이가 꼭 남보다 못한 것 같아.

 

 

어제 집에 잘 들어갔어?“

 

”... .“

 

, 그렇구나...“

 

 

그 뒤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에 말라가는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걸려할 때

 

 

할 말 끝났으면 자리 좀. 이 대리님 커피도 타야해서.“

 

 

처음 들어보는 그의 낮은 음성에 눈에 띄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무거운 분위기에 한발짝 뒤로 물러서 그저 입술만 씹었다.

정말 내게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이 돌아오지 않는 시선과 무거운 침묵에 결국 탕비실에서 나왔다.

내가 만든 결말은 이것이었다.

 

 

 

-

 

 

 

그 이후로도 그의 행동은 차갑고 무겁기만 했다.

이 분위기를 참다 못해 내가 말을 걸라고 하면 바로 일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일 수였고,

그게 아니라면 묻는 말에 짧은 대답만이 이어졌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후에 이어질 상처에 간질거림을 막아야겠다는 간절한 바람은 지금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아닌터라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면 자연스레 따라오던 그의 시선인데, 이제는 뒷모습만 보이는 그에 한숨을 내뱉었다.

옥상으로 향해 담배를 꺼내 물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담배 좀 그만 피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 맘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냐. 네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일찍 죽어버리면 그 사람들은?

-...죄책감 들게 하네 또...

-그러니까 날 봐서라도 끊으라고.

-...한 갑은 펴야겠다.

-혼나 진짜. 앞으로 피면 혼-날 줄 알아.

 

여기 있어도 자꾸만 피어오르는 그의 생각에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았다.

내려가자. 내려가서 뭘 하던 하자. 여기 있어 봤자-

 

 

”...“

 

 

허공에서 얽히는 시선에 멈칫거리는 것도 잠깐, 그렇게나 도망쳤으면서 무슨 용기가 돌았는지 빠르게 그의 앞에 섰다.

그러자 눈에 띄게 놀라는 그가 보인다.

 

 

두준아.“

 

”...“

 

”... 혹시 화난 거 있어?“

 

”...무슨?“

 

아니 요즘 그런 것 같아서...”

 

 

수그러드는 음성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 지난 번에 술 마시다가...”

 

“...”

 

그 날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했어? 알려주면 고칠게. ?”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간질거림은 두렵고, 불쾌했지만 너와 이런 사이가 지속되는 것은 더욱 버틸 수 없었다.

내 말에 잠시 가만히 있던 그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준형아.”

 

?”

 

멋대로 기대를 한 것도 잘못이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은 거야. 아니, 나쁜 거야. 먼저 내려갈게.”

 

 

그렇게 말하며 바로 돌아선 그가 지체 없이 옥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저런 차가운 그의 모습을 보길 바라서 벌인 일이 아니었다.

바로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뭐가 어떻던 앞 뒤 상황을 재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움찔하는 어깨에 입술을 물고 슬쩍 쳐내는 손길에 주먹을 꽉 쥐었다.

 

 

“... .”

 

나 모르겠는 거 있는데 알려주라.”

 

“... 사수 있잖아.”

 

“... , 알려주면 어디 덧나냐-”

 

 

최대한 장난스레 말했는데... 그의 입에서는 한숨만 새어 나왔다.

 

 

나 바빠. 사수한테 물어봐.”

 

 

내가 바란 건 이게 아니었다.

 

 

 

-

 

 

 

준형씨 안녀- 뭐야. 안색이 왜 그래?”

 

 

인사를 하려다만 이 대리님이 다급히 다가와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그에 어색하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무슨! 곧 쓰러질 것 같아! , 뭐야... 술냄새...?”

 

 

사무실이 떠나가게 말을 하는 대리님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속이 상해 혼자 술을 퍼마신 게 이렇게 사무실 곳곳 떠벌려지네.

 

 

어제 회식도 아니었는데 뭔 술을 이렇게 마셨데...”

 

... 그냥요...”

 

두준씨랑 같이 마신거야? 둘이 워낙 친하니 뭐. 그러고 보니 이쯤 되면 두준씨가 죽 사들고 나타나야 하는 거 아니야?”

 

 

대리님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가 들은 건 아닐까 여기저기 살펴보자 아직 출근을 하지 않은 건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 두준씨!”

 

 

하지만 곧이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에 숨을 멈췄다.

그를 부르는 대리님에 시선이 맞닿아 얼른 걸음을 옮기려 했다.

대리님만 아니었으면

 

 

? 어디가게. 두준씨 오는데.”

 

... 저 자리로 가야할 것 같아서...”

 

 

대리님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느새 가까이 온 그가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준형씨랑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준형씨가 이래? 회식 다음 날보다 더하네.”

 

 

대리님의 말에 내게 옮겨오는 시선을 멍청히 마주했다.

시선이 온전히 내게 닿자, 묘하게 찌푸려진다.

그에 바로 시선을 바닥에 내렸다.

 

 

또 죽사다 주겠네, 두준씨.”

 

, 대리님.”

 

?”

 

제가 부장님이 급하게 가져오란 서류가 있어서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 아 어...”

 

 

대리님의 당황 섞인 답에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그가 바로 옆으로 지나간다.

그에 입술을 꽉 물었다.

 

 

준형씨... 두준씨랑 뭔 일 있었어?”

 

“...모르겠어요.”

 

...! 준형씨 입술에서 피!”

 

 

어쩐지 묘하게 비릿한 향이 느껴지더라.

피가 나다 못해 한 방울 흐르는 피를 슥 닦아 내고는 혀로 쓸었다.

아프다.

이런 데서 터질 줄 몰랐던 상처가 너무 아팠다.

 

 

 

-

 

 

 

점점 다가오는 퇴근시간에 혼이 빠져나가는 듯 했다.

도저히 이런 식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나 원했던 그냥 동료가 된 것인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뭐에 짓눌린 듯 갑갑하고 아팠다.

가슴을 퍽퍽 몇 번이나 내려쳐도 이상한 기분을 낫질 않았다.

 

 

자 퇴근들 합시다.”

 

 

부장님의 목소리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는 그의 팔뚝을 덥썩 잡았다.

 

 

술 마시자.”

 

 

놀란 듯 벌어졌던 그의 눈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 안 될 것 같은데.”

 

 

부정적인 답에도 애초에 대답이 필요 없었다는 듯 그의 팔을 이끌었다.

무작정 이끄는 힘에도 그는 순순히 딸려왔다.

포장마차로 들어가 무작정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따서는 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나를 빤히 보기만 하던 그가 연거푸 5잔 째 들어 올려지는 술병을 잡아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그만해.”

 

 

.

이 빌어먹을 차가운 음성은 도저히 따듯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식하게 술을 퍼부어도 따듯하게 감싸주던 그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콧등이 알싸해지는 느낌에 술병을 빼앗아 들어 아예 그 채로 들이켰다.

그러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거칠게 빼앗아서는 더 큰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미쳤어? 뭐 하는 짓인데?”

 

 

처음 들어봤다.

화가 서린 큰 소리.

그에 놀라 반사적으로 딸꾹질을 해대자, 눈동자에 일말의 죄책감이 서렸다.

사람 행동이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거야...? 그 전에는 유리 다루듯 했으면서...

갑자기 복 받치는 서러움에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러자 오전에 터친 입술에 상처가 벌어진 듯, 피 향이 맴돌았다.

그에 화들짝 놀란 그가 가방을 뒤지더니 연고 하나를 꺼내 내 턱을 잡아들고는 얼른 연고를 바른다.

 

-무슨 연고를 가지고 다니냐.

-네가 잘 다치잖아.

-...?

-너 엄청 덜렁거려서 잘 다치잖아. 이것 봐 또 다칠 뻔 했지. 어휴-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혀야지.

 

등신. 머저리.

나를 그렇게 개무시 했으면서 왜 그건 아직도 갖고 다니는 건데.

점점 떨리는 입가에 결국 눈물이 터졌다.

볼을 타고 흐르는 따듯한 느낌에 끅끅거리자 놀란 그가 허둥지둥 눈물을 닦아낸다.

 

 

왜 울어? 그렇게 아파?”

 

 

자상한 얼굴 하지마. 따듯한 얼굴 보여주지 말라고.

눈을 꽉 감아 버리자, 눈가에 가득 맺혔던 눈물이 비가 오듯 타고 내렸다.

여전히 내 눈물을 닦아내는 따듯한 손길은 장벽을 부수기엔 차고도 넘쳤다.

 

 

준형아 왜 울어. ?”

 

이제는 내가 싫어?”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란 듯 눈물을 닦아내느라 황급히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췄다.

 

 

“... ?”

 

내가 싫냐고... 내가 너한,테 끅, 못 되게, 굴어서...”

 

“...”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그에 결국 또 크게 울어 버렸다.

내 얼굴을 떠나려는 그의 두 손을 부여잡고는 끅끅거리며 울었다.

곧이어 한숨 소리가 들리고 그의 손이 내 손을 물린 채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다시금 조금의 냉기를 품은 어투가 무서웠다.

그에 눈을 크게 떴다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는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히끅, 그냥, 그냥 너랑 있으면 좋아...”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흐르는 눈물에도 그는 닦아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업자득이구나.

그의 굳은 표정을 힐끗 바라보다, 순간 볼에 닿는 그의 따스한 손에 고개를 들었다.

 

 

그만 울어. 계속 울면 너 아파.”

 

“...”

 

그리고 술 그만마시고, 내일 또 밥도 못 먹으려고.”

 

두준아...”

 

 

작게 그의 이름을 말하자 그렇게나 보고 싶던 따스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일어나. 집에 가자.”

 

 

 

-

 

 

 

달빛만이 들어오는 침실에서 그저 멍하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집에 가자라는 말과 함께 도착한 그의 집에서는 자켓만 벗고, 침대 위, 그의 품에 가득 안겼다.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 손길에 까무룩 잠이 오려는 찰나 그의 말이 들렸다.

 

 

나랑 있으면 좋다고?”

 

“... ...”

 

 

내 대답에 푸스스 웃은 그가 머리칼에 살짝 입을 맞춘다.

 

 

그게 사랑이야.”

 

“... ?”

 

거창하지 않아. 같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두려워서 불길하고 아프고.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고.”

 

 

그의 다정한 말과 다정한 어투에 다시금 코가 아려오는 것을 느끼고 더욱 깊숙이 안겼다.

 

 

준형아.”

 

...”

 

우리 앞으로 1분씩 살아가자.”

 

“... 무슨...”

 

 

그의 말에 무슨 소리인가 하여 떨어져 얼굴을 보려 했지만, 더 꽉 껴안는다.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한테 주어진 이 1분만 생각하는 거야.”

 

“...”

 

나는 지금 1분에 네 눈을 볼 거야.”

 

 

그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어깨를 좀 떨어트려 눈을 마주해왔다.

잔잔하게 온기를 머금은 눈빛은 가슴께를 간질렀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푸스스 웃은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 1분에 너는 뭐 할 거야?”

 

 

그의 질문에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 그에게 손을 뻗었다.

 

 

다시 안아줘...”

 

 

말과 동시에 그는 나를 한가득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등을 토닥인다.

 

 

우리한테 미래를 걱정한다는 건 다음에 서로와 뭘 할지 고민하는 것뿐이야.”

 

“...”

 

그럼 미래는 따스함과 간지러움으로 가득 찰 거니까.”

 

“...”

 

 

그의 말을 끝으로 지긋이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한 없이 간지러운 사람이 같이 있어서 행복하고, 따듯해서 행복하다.

내 목을 죄던 불길한 배신감과 상처는 원래 없었다는 듯이, 온전히 그에게 집중했다.

 

너무나 간지러워서.

 

 

 

 

 

 

 

 

 

 

 

 

 

 

 

 

 

 

 

 

Part 2. 두준ver.

 

 

 

 

 

 

여러 사람과 지내며 대화를 하거나, 약간의 행동을 하였을 때, 유독 내 마음이 반응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등의 불안을 봄 같은 기운이 잠시 가리면 마음속에서부터 간지러움은 막지 못할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간지러움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뇌와 심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배와 허벅지로 퍼져나간 간지러움은 그대에게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느끼는 간지러움. 이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

 

 

앞으로 나의 앞길엔 제발 꽃길만 가득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내 나이 스물여덟. 드디어 나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날이 왔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들려온 합격 통보에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웠다. 설레고 또 한편으론 나의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첫 출근을 앞둔 시점에 있었던 신입사원 연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러면 실례인 줄 알면서도 계속 그 사람에게만 시선이 머물렀다. ‘맑고 뽀얗다.’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한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의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000부로 채용된 신입사원 윤두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박수 소리에 고개를 들자, 괜스레 밀려오는 민망함에 콧잔등을 갉작였다. 그러자 내 바로 다음으로 그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000부에 채용된 용준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인사가 끝나자,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한 가지는 이름은 용준형이라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나와 같은 부서라는 것이다.

 

 

 

부서별로 자리에 앉아 부장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유난히 그는 이런 시간을 못 견뎌 하는 것 같았다. 애꿎은 손톱만 뜯으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고, 그저 간간이 의무적으로 웃어 보였다.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조금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말은 건넸다.

 

 

 

 

안녕하세요. 준형씨. 앞에 앉아도 될까요?”

, . 앉으세요. 죄송하지만 성함이...”

, 윤두준입니다. 89년생이에요.”

저도 89예요! 와 동갑이다. 반가워요.”

 

 

 

 

그렇게 나는 준형이를 알게 되었고, 그 시점부터 내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려왔다. 우리는 동갑이고, 또 입사 동기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 공통분모는 남에게는 겨우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 출근을 시점으로 하여 많은 것을 서로에게 기대어 의지하며 지냈다.

 

 

 

 

 

 

-

 

 

- 점심!”

난 못 먹어...”

 

 

 

나지막이 내뱉는 준형이의 음성에 놀라 얼굴을 살펴보니, 형편이 없었다. 하루 만에 핼쑥해진 볼살과 잔뜩 찡그려진 미간, 그리고 어색하고 올라가 있는 입꼬리까지.

 

 

 

 

어디 아파? 감기 걸린 거야?”

숙취...”

...”

 

 

 

 

숙취하는 말에 그나마 안도가 되었다. 아니,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마신 건지 조금은 화도 났지만, 당장 준형이의 몸이 걱정되었다. 죽이라도 사 들고 와야 하나 고민을 하는 찰나,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준형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이야기했다.

 

 

 

 

점심 먹어. 배고프겠다. 나는 조금 자면 나을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아프다고 네가 안 먹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걱정하는 내 마음은 모르겠냐. 용준형아.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예 내 등을 문 쪽으로 밀어버린다.

 

 

 

 

. 빨리. 내 몫까지 먹어.”

“... 올 때 죽이라도 사 올게.”

아 됐다니까 그러네.”

걱정돼서 그래. 알았지? 쉬고 있어. 금방 먹고 올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늘 버틸 준형이었기에 대충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근처 죽집으로 달려가 준형이가 좋아하는 죽을 포장했다. 사실 나도 소화가 그렇게 잘 되는 편이 아니라 이렇게 느긋하지 않게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속이 엉망이 되어 약을 달고 살았다. 그래도 내가 아픈 것보다 준형이가 아픈 것이 더 신경 쓰였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숙취는 좀 나아졌는지, 밥은 좀 챙겼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지만, 준형이에게는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자는 건가 싶어 메시지를 전송하자, 일방적으로 보낸 나의 메시지들만 가득하다.

 

 

 

 

-준형아 몸은 괜찮아?

-준형아?

-내가 죽 사서 갈까?

-아직 자는 건가...

 

 

 

 

그렇게 핸드폰을 옆에 두고 밀린 축구 경기 영상을 보고 있는 와중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는 기쁜 마음에 얼른 핸드폰을 확인하니,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의 어찌 보면 성의 하나 없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괜찮아.

 

 

 

묘한 기분에 준형이에게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 보상을 요구한 것도, 내가 이만큼 걱정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에 준형이에게 닿지 못한 것 같아서, 아니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닿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준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이제껏 잔거야?”

-어어. 역시 숙취에는 잠이지.

아이씨 더 아픈가 걱정했네.”

-뭔 걱정을 시도 때도 없이 하냐, 너는. 다 그렇게 걱정하다가 네가 일찍 죽겠다.

“... 다른 사람은 걱정 안 하지.”

-?

너만 걱정한다고 멍청아.”

-... 내가 아무리 숙취가 심해도 그렇지 무슨! 이상한 말 하지 마. 놀랐네.

 

 

 

 

아무리 닿으려고 해도 닿지 않는 용준형에게 조금은 직설적으로 말을 건넸다. 그러자 우리 둘. 모두 오고 가는 말이 없었다. 아쉽지만 그래. 내가 물러서는 게 빠를 것이다. 용준형은 분명 또 혼자 불안해하면서 손톱이나 뜯고 있을 거다. 그러기 전에 한발 물러서는 게 이 관계를 어긋나지 않게 하는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 준형

-! 치킨 왔다! 나 저녁 먹는다! , 너도 먹어! 월요일에 보자!

 

 

 

 

말할 틈도 없이 끊겨버린 핸드폰을 붙잡고 한동안 말없이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저 말없이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도 숙취로 고생했으면서 무슨 치킨을 먹냐. 그러다 체하겠다. 조심해.

 

 

 

 

하지만 내가 보낸 메시지를 끝으로 끝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 동안 나의 시간은 준형이를 걱정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밝아오는 월요일 아침 일 분이라도 빨리 준형이를 만나고 싶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일부러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동그란 뒤통수가 눈앞에 보인다.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준형이의 어깨를 짚으며 물었다.

 

 

 

 

준형아. 머리는 좀 어때?”

어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안색이 안 좋은데?”

 

 

 

눈에 띄게 굳어 있는 얼굴 근육에 의아함을 가지고 준형이의 뒷머리를 쓸어내리려 하자, 준형이 고개를 홱 돌린다.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그저 무안함에 준형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걱정했는데 왜 문자 안보냐.”

그냥... 바빠서...”

걱정 하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지?”

 

 

 

만약 그렇다고 하면 진심으로 서운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준형이는 굳은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로의 공간 사이를 벽으로 메워 갈 곳을 잃어 멈춰버리자 그 누구도 다른 곳으로 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멈춰버린 그곳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니야. 얼른 가서 일이나 해라.”

너 때문에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어휴-”

...러냐.”

 

 

 

 

여기서 길을 찾기 위해 움직이면 용준형을 잃는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그를 마주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 번도 넘게 하지만 막상 용준형의 얼굴을 보면 모든 다짐이 무너져내린다. 우선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손을 들어 뒷목을 긁적이다 말없이 용준형의 머리를 헤집고 자리로 돌아갔다.

 

 

 

 

부딪혀버린 벽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자리를 피해버린 겁쟁이뿐이었다.

 

 

 

 

 

 

-

 

 

용준형씨- 커피요-”

 

 

 

 

점점 잠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커피를 건넸다. 그리고 비어있는 책상 한쪽에 엉덩이를 걸치며 앉았다. 그러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준형이의 모습이 보인다.

 

 

 

 

- 빨리 주말 왔으면 좋겠다-“

”... .“

주말에 뭐 할 거야?“

그냥... 그냥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럼 영화 볼래? 같이 영화 보고 밥 먹자.“

 

 

 

 

요 며칠 지나 본 결과 준형이는 아마 거절을 할 것이다. 예전처럼 나를 편하게 대하지 않고, 무언가 껄끄러워하며 둘이 있는 공간과 시간을 어색해하며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그래. 그러자.’라고 대답하는 용준형의 모습을.

 

 

 

 

”... 나 생각해 보니까 본가에 내려가야 해서...“

, 그러냐? 그럼 다음에 보자.“

...“

그리고 핸드폰 좀 봐라. 장식이냐.“

 

 

 

 

혹시나 하는 마음은 변함없이 역시나였다. 알면서도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내 표정에 힐끗 보던 준형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행동에 서운한 마음과 주말 동안 무시해버린 문자, 그리고 걱정했던 마음을 한데 담아 준형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눈앞에 두고 지켜보든가 해야지. .”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내가 의도하지 않게 내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나왔다. 아차. 싶은 순간 탁-소리와 함께 준형이는 내 팔을 쳐냈다. 갈 곳을 읽어버린 내 팔은 그저 허공에 놓여있었고, 놀란 마음에 준형을 바라보니, 본인도 놀란 표정으로 내 팔과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윤두준. 이 정도는 각오하고 덤볐어야지. 괜찮아. 나 자신을 겨우 다독이고, 놀란 준형이에게 억지로 입을 열어 말을 건넸다.

 

 

 

 

, 아무튼 시간 좀 내라고.“

...“

같이 퇴근하자. 먼저 가지마.“

...“

 

 

 

 

 

 

_

 

 

과연 너를 향한 간지러움을 알아차린 것일까. 이 간지러움은 한없이 너만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너에게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무작정 준형이의 마음을 갖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조금이라도 같은 시선을 주고받고,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가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욕심이었을까. 너와 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게 벽을 쌓아가고 있는 너에게 당장이라도 벽을 허물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우리 모두가 상처받을 것을 알기에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저 최대한 이 간지러운 마음을 숨기고, 또 숨겨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이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했던가. 숨기려고 해도 자꾸만 커져만 가는 마음을 준형이 앞에서도 숨기는 것은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 나 이거 모르겠는데 좀 알려주라.”

 

 

 

 

내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어색해하지 않으려고 행동해보아도 준형이의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준형이 어깨를 감싸자 준형이의 표정이 티 나게 굳으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손을 쳐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쳐진다는 것이 그렇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명확히 알았다. 쓰린 마음을 안고 준형이를 바라보자,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이야기를 건넸다.

 

 

 

 

사수한테 물어봐. 사수는 왜 있냐.“

”... 아 그러지 말고- 간단한 건데 알려주면 어디 덧나냐?“

”... 더워. 저리 가.“

 

 

 

 

퉁명스러운 말투. 예전에는 어색해하면서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대답해 주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뭉툭한 칼날들이 모여 찌르면 베이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나버린다. 지금 내 마음은 뭉툭한 칼날들이 수도 없이 박혀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

 

 

변하지 않는 끈질긴 내 마음에 나 역시 새삼 놀랐다. 서운함은 지속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형이를 보지 않을 것도 아니니, 평소와 다름없이 준형이를 대하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준형이의 대한 마음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구멍이 난 자리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겨우겨우 메꾸어 가며 마음을 도닥였다.

 

 

 

 

그의 자리에 놀러 가 나에게 반응을 하든 하지 않든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말랑말랑 한 그의 볼을 잡고 살짝 늘리며 장난을 치다,

 

 

 

 

- 배고프다- 볼 말랑말랑한데 한번 깨물어 봐도 되냐? 찹쌀떡-”

 

 

 

 

라고 하였다. 그러자 또 티가 나게 얼굴을 굳히며, ‘두준아.’하며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가까이 가던 내 얼굴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머쓱함에 준형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

저녁때 시간 돼?“

저녁? 당연하지.“

”... 그럼 퇴근하고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바로 나가자!“

 

 

 

웬일로 용준형이 먼저 술을 마시자고 하는 것인지지. 그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었다. 저녁에 둘이 있는 것 자체로 벌써 행복했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입에서는 절로 아싸-’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_

 

빨리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이 대리님이 나를 부른다. 급한 마음에 잠시만요.’라고 외치곤, 핸드폰을 들어 준형이에게 연락했다.

 

 

 

 

-미안. 나 이 대리님이 잠깐 얘기 좀 하쟤... 먼저 가 있어! 뛰어갈게!

 

 

 

 

꼭 이렇게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별거 아닌 이야기로 사람을 붙잡아 놓는다. 급한 마음에 무조건 .를 외치고 준형이와 약속한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러자 홀로 테이블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는 그의 모습에 술병을 가로챘다. 그리고는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누가 혼자 마시고 있으래.”

 

 

 

 

묻는 말에 그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걱정이 담긴 내 말은 그대로 무시하곤, 술잔을 내민다. 내민 술잔을 엉거주춤 받자, 준형이가 술을 채워준다. 그리고는 본인의 술잔에도 다시 술을 채운다. 혼자 벌써 반병이나 마셨으면서 무슨 일이길래 말도 하지 않고 술부터 마시는 건지 궁금했다. 차라리 말이라도 하면 편할 텐데. 입으로 술잔을 가져갈 때 준형이가 잡고 있는 술잔을 조심스레 잡아당기곤, 테이블 위에 탁-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왜 그래 뭔 일인데?“

”...“

힘든 일이라도 있어?“

”...“

준형아. 말을 해-“

두준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나지막이 불리는 내 이름에 살짝 불안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맞은 편에 앉은 준형이를 바라보자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 네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 ?“

 

 

 

 

건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자 나에게 묻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그리고 단번에 느꼈다. 더 이상의 간지러움은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그 모든 결론에 도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단지 입술을 깨무는 일이었다. 그런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준형이는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어떻게 볼지도 걱정되고...“

. 남들 시선이 걱정돼?”

 

 

 

 

남들의 시선이라. 그런 것을 생각했다고. 불안해하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데 그 이상은 조금...“

나는 그래도 조금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 미안.“

내가 어리석었네.“

미안해, 두준아...“

아니야. 네가 정말 그러면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한 거잖아. 힘들었겠네. 미안. 너는 아무 의미 없는 호의였는데.“

”...“

먼저 일어날게. 앞으로는 네가 그렇게 느낄 일 없을 거야. 미안했다.“

두준아.“

 

 

 

 

자신의 어리석음에 웃음이 나왔다. 혼자 착각하고, 혼자만의 감정을 그에게도 바라고 있었다.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뜬 준형이 어깨를 흠칫 떨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조차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에게 호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잡힌 소매를 빼내자 다시 한번 붙잡으려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을 했다.

 

 

 

 

붙잡지 마.“

”... 미안...“

”...“

 

 

 

 

네가 원한 것이 이런 결말이라면 나는 당연히 너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빌어먹게 간질거리는 내 마음은 앞으로 그럴 일이 없도록 어디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

 

 

다음날부터 나는 이제 용준형의 회사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동기 윤두준이었다. 잠깐 옥상에서 머리를 식히고, 탕비실에 들어가자 먼저 커피를 타고 있는 그의 동그란 뒤통수가 보인다. 뒤를 돌자 마주친 시선에 그저 말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준형이는 쥐고 있던 머그잔만 만지작거리다 이내 입을 열어 나에게 물었다.

 

 

 

 

어제 집에 잘 들어갔어?“

”... .“

, 그렇구나...“

 

 

 

 

너와 나 사이에 맴도는 어색한 기류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을 때, 준형이 뭐라 말을 하려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내가 다짐했던 그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한발 먼저 입술을 열었다.

 

 

 

 

할 말 끝났으면 자리 좀. 이 대리님 커피도 타야해서.”

 

 

 

 

내가 건넨 말에 준형이는 흠칫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매번 내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멀어지는 발소리에 낮은 한숨을 뱉었다. 어쩌면 우리. 아니 너와 나 사이의 결말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그러한 의미 없고 무덤덤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지극히 업무적인 이야기만을 제외하고는 준형이와 사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회사에서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도저히 일이 잡히지 않아 옥상으로 가니, 자연스레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내 시선은 언제나 준형이를 먼저 찾는다. 내 시선의 마지막엔 항상 용준형이 있었다.

 

 

 

 

-담배 좀 그만 피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 맘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냐. 네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일찍 죽어버리면 그 사람들은?

-... 죄책감 들게 하네 또...

-그러니까 날 봐서라도 끊으라고.

-... 한 갑은 펴야겠다.

-혼나 진짜. 앞으로 피면 혼-날 줄 알아.

 

 

 

 

떠오르는 옛 생각에 그저 실없이 웃다 뒤돌아서서 내려가려고 하는 나의 행동보다 준형이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허공에서 얽히는 시선에 그저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준형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두준아.“

”...“

”... 혹시 화난 거 있어?“

”... 무슨?“

아니 요즘 그런 것 같아서...”

아니. 그런 거 없는데.”

“... 지난 번에 술 마시다가...”

“...”

그 날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했어? 알려주면 고칠게. ?”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의 의미를 찾는데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의미로 말하는 걸까. 무엇을 고친다는 것일까? ‘나는 널 좋아하는데 네가 그 마음을 몰라줘서 내가 기분이 나빴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날 좋아해줘.’라는 대답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그리고 눈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를 바라봤다.

 

 

 

 

준형아.”

?”

멋대로 기대를 한 것도 잘못이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은 거야. 아니, 나쁜 거야. 먼저 내려갈게.”

 

 

 

 

기대를 하게 만든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되면 너는 나에게 와줄까? 어리석은 생각은 이쯤에서 접어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그 자리에서 더는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어 일말의 지체도 없이 뒤를 돌아 옥상을 내려왔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에 올라오는 손길에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니, 준형이의 얼굴이 보였다. 자꾸만 내 앞에서 다잡으려고 한마음을 흔들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이유를 물을 것 같아 입술을 물고, 어깨에 둘러진 팔을 슬쩍 쳐냈다.

 

 

 

 

“... .”

나 모르겠는 거 있는데 알려주라.”

“... 사수 있잖아.”

“... , 알려주면 어디 덧나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한숨이 나왔다. 네가 원했던 결말에서 네가 흔들린다고 하면 내가 바로 잡아 주어야 할 것이다. 더는 혼자 기대하고 그 기대에 어긋났다고 하여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나 바빠. 사수한테 물어봐.”

 

 

 

 

 

 

-

 

 

출근을 하자 제일 먼저 들리는 것은 호들갑스러운 이 대리님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옆을 보니 준형이 함께 서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자리에서 저렇게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이내 관심을 꺼두었다. 그리고 이 대리님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준형씨랑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준형씨가 이래? 회식 다음 날보다 더하네.”

 

 

 

 

? 그러고 보니 미약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에 준형이를 바라보다 이내 좋지 않은 얼굴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시선이 옮겨 자신에게 닿자 준형이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

 

 

 

 

또 죽사다 주겠네. 두준씨.”

, 대리님.”

?”

제가 부장님이 급하게 가져오란 서류가 있어서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 아 어...”

 

 

 

 

이대로는 정말 변할 것이 없을 것 같아 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런 식으로 엮이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제 겨우 정리를 하려는데 너는 왜 자꾸 구멍이 나버린 내 마음을 메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감정이라면 내가 피해 주는 것이 맞았다.

 

 

 

 

 

 

-

 

 

그저 아무 걱정도 없었던 사람처럼 지냈다. 아침에 있던 일에 대하여 이 대리님은 둘이 무슨 일 있었냐?’며 물었지만, 나는 그저 아무 일도 없었노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묵묵히 모니터를 바라보자 이 대리님도 자리를 비켜주셨다. 잠시 생각이 빠진 사이 부장님의 퇴근들 합시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누군가 갑자기 내 팔뚝을 덥썩 잡는다. 그리고는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말은 한다.

 

 

 

 

술 마시자.”

 

 

 

 

놀랐던 마음은 잠시, 내 미간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 안 될 것 같은데.”

 

 

 

 

어제도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 또 술이라니. 그러나 내 대답은 애초에 듣지도 않으려고 했다는 듯, 무작정 나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이제 나조차도 모르겠다.’라는 마음에 그저 나를 이끄는 준형이를 따라갔다. 그러고는 포장마차로 데려가 묻지도 않고 소주 한 병을 시킨다. 테이블에 소주가 놓이자마자, 본인의 잔에 술을 채워 단숨에 비워낸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또다시 잔을 채우려는 준형이의 행동에 더는 안 되겠어 술병을 잡아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놓았다.

 

 

 

 

그만해.”

 

 

 

 

낮게 깔린 내 목소리에 준형이는 갑자기 술병을 빼앗아 아예 병 채로 들이켰다.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 전보다 거칠게 빼앗아 더욱 큰 소리가 울리도록 병을 내려놓았다.

 

 

 

 

미쳤어? 뭐 하는 짓인데?”

 

 

 

 

처음으로 용준형에서 화가 났고, 처음으로 화를 냈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준형이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놀라더니 이내 딸꾹질을 해댔다. , 이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입술을 꽉 깨문다. 그러자 물린 이 사이로 핏방울이 맺힌다. 얼른 가방을 뒤져 평소에도 잘 다치는 준형이 때문에 가지고 다녔던 연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최대한 손길이 닿지 않게 연고를 발라 주었다.

 

 

 

 

연고를 바르고, 손을 떼어내자 준형이는 나를 보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다. 깜짝 놀라 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피가 맺혀있는 입술을 보며 물었다.

 

 

 

 

왜 울어? 그렇게 아파?”

 

 

 

 

내 질문에 아예 두 눈을 감아버린다. 그러자 눈물은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숫제 비가 내리듯 준형이의 얼굴을 덮었다.

 

 

 

 

준형아 왜 울어. ?”

이제는 내가 싫어?”

 

 

 

 

형편없이 갈리지는 음성이 들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주던 손이 그래도 멈춰버렸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준형이에게 물었다.

 

 

 

 

“... ?”

내가 싫냐고... 내가 너한,테 끅, 못 되게, 굴어서...”

“...”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무슨 대답을 듣고자 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준형이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아예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착잡해진 마음에 준형이의 얼굴에서 손을 떼려 하자 준형이는 내 손을 부여잡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낮은 한숨과 함께 잡힌 손을 그대로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나 보다. 이제는 나도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준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준형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시선을 피하다 이내 입술을 열었다.

 

 

 

 

“...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히끅, 그냥, 그냥 너랑 있으면 좋아...”

 

 

 

 

자신의 말을 끝으로 다시금 눈물을 흘리는 준형이였지만, 나는 준형이의 눈물을 닦아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나와 있으면 좋다고? 결국,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벽을 너 스스로 허물었구나. 벽에 박혀 전해지지 않았던 내 마음이 이제야 네 마음에 닿았구나.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겨도 되겠구나.싶었다. 그러자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간지러움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준형이의 볼을 감쌌다. 그러자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그 예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만 울어. 계속 울면 너 아파.”

“...”

그리고 술 그만마시고, 내일 또 밥도 못 먹으려고.”

두준아...”

 

 

 

 

작게 불린 내 이름에 미소가 났다. 아마도 준형이는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 것 같다. 그 마음에 손을 내밀어 준형이에게 말했다.

 

 

 

 

일어나. 집에 가자.”

 

 

 

 

 

 

-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만이 들어오는 침대에 누워 준형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그냥 오롯이 용준형만을 끌어안고 있었다. 가만히 준형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다 문득 아까의 말이 떠올라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나랑 있으면 좋다고?”

“... ...”

 

 

 

준형이의 대답이 내 마음을 찌르고 달아났다. 구멍 난 마음이 조금씩 메워질 때마다 느껴지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준형이의 머리칼에 입을 맞췄다.

 

 

 

 

그게 사랑이야.”

“... ?”

거창하지 않아. 같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두려워서 불길하고 아프고.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고.”

 

 

 

 

말이 끝나자 준형이는 더욱 깊이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안겼다. 그런 준형이의 등을 토닥이자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미치도록 좋았다.

 

 

 

 

준형아.”

...”

우리 앞으로 1분씩 살아가자.”

“... 무슨...”

 

 

 

 

준형이는 품 안에서 조금 나와 내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나는 이제 곧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를 위해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한테 주어진 이 1분만 생각하는 거야.”

“...”

나는 지금 1분에 네 눈을 볼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준형이의 어깨를 잡고 내 품에서 조금 떨어트리곤 예쁜 눈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마주치면 피하기 바빴던 준형이의 시선. 단 몇 초라도 좋으니 이렇게 시선을 마주 하고 싶었던 나의 작은 바람이 이제야 이루어졌다. 그 생각에 미치자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까만 눈동자에 오롯이 나만 담고 있는 준형이에게 물었다.

 

 

 

 

이번 1분에 너는 뭐 할 거야?”

 

 

 

 

그러자 준형이는 잠시 고민을 하던가 싶더니, 이내 나에게 손을 뻗었다.

 

 

 

 

다시 안아줘...”

 

 

 

 

준형이의 말과 동시에 내 품 가득 끌어안았다. 내 허리에 감겨오는 준형이의 팔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천천히 준형이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한테 미래를 걱정한다는 건 다음에 서로와 뭘 할지 고민하는 것뿐이야.”

“...”

그럼 미래는 따스함과 간지러움으로 가득 찰 거니까.”

“...”

 

 

 

 

일정한 박자로 내쉬는 준형이의 숨결이 닿은 마음이 간질거렸다. 내 안에 퍼져버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던 간지러움. 이 간지러움은 언제나 너를 향해 있었고, 그래서 용기 낼 수 있었고, 너를 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너를 향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역시 내가 느낀 이 간지러움은 너만을 향한 것이었고, 그 간지러움은 사랑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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