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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글

[투준] 숙취

더블제이'-' 2018. 7. 17. 19:48


숙취 : 술에 몹시 취한 뒤의 수면에서 깬 후에 특이한 불쾌감이나 두통, 또는 심신의 작업능력 감퇴 등이 1∼2일간 지속되는 일을 말한다.
 
 
 
 
 


“으... 머리야. 몇 시야...”
 
 
 
 
 겨우 손을 들어 핸드폰을 보자 오전 11시 30분을 알려준다.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이미 나는 오전 수업을 놓쳤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나도 그대로 포기해버렸다.
 
 
 
 
 내가 두 번 다시 이렇게 술을 마시면 용준형이 아니고 견준형이다. 견준형.
 
 
 
 
 수도 없이 많이 쌓여있는 카톡 중 유독 윤두준의 이름이 보인다.
 
 
 
 
- 야. 잘 들어갔냐.
- 야. 아직 자냐?
- 수업 시작했어.
- 전화는 왜 안 받아.
- 일어나면 전화해.
 
 
 
 
 등의 연락이. 분명 어제 함께 술자리에 있었는데 술은 나 혼자 마셨나보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멀쩡한 거야. 카톡을 보고 있자 발신자에 ‘두베르만’이라 적힌 이름이 뜨며 전화가 울린다.
 
 
 
 
“... 어.”
- 용준형 다 죽어가네. 괜찮냐?’
“... 아니.”
- 해장하자. 집으로 갈게
 
 
 
 
 해장을 하는데 왜 우리 집으로 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올라오는 술기운에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자 얼마 후, 도어록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곧이어 두준이 해맑게 웃으며 들어와 라면을 흔들거리며 보인다. 아니 우리 집을 마치 본인의 집처럼 드나드는 저 뻔뻔함에 박수를 보낸다.
 
 
 
 
“야... 분명 우리 술 같이 마셨는데 왜 나만 이래. 나 혼자 다 마셨냐?”
“약해 약해. 우리 용준형. 애기네. 애기야.”
“숨 쉬는데도 술 냄새나.”
“언제까지 누워있을 건데. 좀 씻어라. 유기견 같애.’”
 
 
 
 
 두준이의 말에 눈을 흘기자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어 보인다. 그렇게 웃지 마. 설레서 죽어버릴 것 같으니까.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항상 술자리에서 먼저 취해 뻗어버리는 사람은 나였다. 아마도 내가 윤두준보다 더 빨리 취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주량의 차이도 아니고, 버티려는 정신력의 차이도 아닌 그저 마음의 차이다.
 
 
 
 
 단둘이 술자리를 갖게 되면 항상 두준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빠르게 술을 마시다 보니 항상 먼저 취하고 뻗어버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개팅이다. 미팅한다며 내 속을 뒤집어놓는 저 얄밉지만, 너무 사랑하는 놈. 그게 윤두준이었다.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짝사랑은 약도 없다던데. 괜히 우울해진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대충 옷을 걸치고 나오자 두준이 수건을 들고는 거울 앞에 앉히곤 머리칼을 말려준다. 스치는 손길에 기분이 좋아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두준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보자 시선을 마주하며 다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야. 고양이 같다. 머리 만져주니까 좋다고 눈 감고 그릉그릉거리는 고양이 같애.”
 
 
 
 
 라면서 ‘귀엽네’하곤 내 머리를 제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 이놈이 오늘 내 심장 터지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싶어 조금은 정색을 했다. 그러기엔 내 얼굴이 너무나 붉어져 있었기 때문에 전혀 먹히지도 않았을 거다.
 
 
 
 
 역시나 위협적이지도 않았는지 윤두준은 그저 웃기에 바빴다. 우린 야무지게 라면을 끓여 먹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는 술기운에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지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윤두준은 내 옆에 없었다. 시각을 확인하고자 핸드폰을 들자 윤두준의 새로운 카톡이 도착해있었다.
 
 
 
 
-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간다. 내일 봐.
 
 
 
 
 가기 전에 깨우고 가지. 얼굴 한 번 더 보게. 내일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만 흘러간다.
 
 
 

 
 
*
 
 
 날이 이렇게 더워진 것을 보니 이제 종강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얼른 이 지긋지긋한 시험도 좀 끝나라. 제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말고 자꾸만 나가버리는 정신에 멍하게 앉아있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두준이 슬그머니 쪽지를 보내온다.
 
 
 
 
 뭐지 싶은 마음에 바라보니 쪽지에는 ‘술.술.술.술.술.술.’이라 적혀있다. 윤두준도 지금 제정신은 아니구나 싶어 ‘시험 끝나는 날 마셔.’라고 답장을 써 보내자 곧바로 ‘ㅠㅠ’라 적힌 답장이 날라왔다. 그 모습에 웃으며 앞을 바라보자 두준이 턱을 괴고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 보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시험의 마지막 날 술 약속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 두준이는 내 손목을 잡고는 술집으로 끌고 갔다.
 
 
 
 
“너 무슨 전생에 막걸리 받는 주전자였냐?”
“아. 시험 싫어. 우리 준형이랑 술도 못 마시고.”
“나는 왜. 그냥 술이 마시고 싶은 거였겠지.”
 
 
 
 
 그렇게 한잔 두잔 받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테이블에는 빈 병들이 늘어갔고, 나는 내 앞에 놓인 빈 병만큼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두주나. 내가 지인짜아로 조아해.”
“엉. 나도 우리 주녕이 좋아하지.”
“씁. 아니야. 등신아. 그거 말고. 그래그래! 사랑! 엘오쁘이! 이거라고”
 
 
 
 
 내 말에 두준이는 무어라 대답을 했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한 채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두준이 웃으며 내 말에 ‘나도.’라고 대답하는 꿈을. 깨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라도 두준이의 대답을 들어 행복했다.
 
 
 
 
 타오르는 갈증에 눈도 뜨지 못하고 물을 찾았다. 그러자 내 앞으로 건네지는 차가운 기운에 손으로 더듬거리며 물컵을 받아들고 단숨에 마셨다. 겨우겨우 눈을 뜨자 눈앞에 두준이가 보인다.
 
 
 
 
 어제 데려다줬구나. 나 어제 뭐 한 거지? 어제... 시험도 끝나고 긴장도 풀려서 술 마시다가... 고백했구나. 어? 고백??!!! 이 미친놈아 나가 죽어. 갑자기 고백을 하다니. 서서히 상기되는 내 기억에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자학을 하자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망했다. 용준형. 나가 죽어.
 
 
 
 
“어... 그게 두준아. 어...”
“...”
“어. 시,실수야! 그 친구로 좋아한다는 거였어. 하하”
“친구로? 아니라며. 엘오브이 한다며.”
 
 
 
 
 그냥 모른 척 지나가지 저놈은 왜 또 다 기억하는 거지 싶었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넘어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바보같이 헤헤 웃어 보이며 입술을 열었다.
 
 
 
 
“에이. 두준아. 그만큼 널 생각한다고. 내 맘 알지?”
“너 지금 내 마음 갖고 먹고 튀냐?”
“?”
“내 대답은 기억에 없구만?”
 
 
 
 
 윤두준의 대답이라니? 자리에 앉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한번 어제의 술자리를 상기하자 내 말에 히죽 웃는 두준이의 얼굴이 보인다. 사랑이라 고백하는 내 말에 두준이는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술집은 시끄러웠고, 두준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조금 더 집중하자 그제야 명확하게 두준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아, 그러니까 그게 꿈이 아니란 말이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준을 바라보자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팔을 벌린다. 그렇게 나는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남아있는 숙취를 가진 채 두준의 품에 안겼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혈관엔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르는 것 같고, 숨을 쉴 때 아직도 술 냄새가 올라왔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 빠르게 뛰었다. 그 이유는 아마 윤두준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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