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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어느 산속에 자그마한 불빛이 반짝인다. 그 앞으로 다가가자 젊은 남자 한 명이 작은 건물 앞에 놓인 평상에 앉아 한가로이 담배를 물고 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새는 어린아이가 옹알이를 하듯 쉼 없이 남자를 향해 울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거니. 오늘은 비가 많이 오겠구나. 손님이 많을 것 같으니 어서 준비하자꾸나.”
남자의 말은 새는 하늘로 날아올라 힘껏 울었다. 남자는 새의 지저귐에 웃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가 들어간 문 옆에는 작은 팻말이 붙어있다.
‘두준상회’
*
- 딸랑
“어서 오시오.”
남자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여러 마리의 참새는 안에 가게 안에 놓인 횟대에 나란히 앉아 물방울이 맺힌 날개를 털어내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쉬어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두준님.”
“별말씀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모두가 위험하다네. 가족끼리 또 어딜 가시려고 이리 날갯짓을 하였는가?”
두준이라 불린 남자는 담배를 물고 웃으며 참새들에게 묻자 참새들은 다가오는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간다고 이야기를 건넨다. 횟대에 앉은 참새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하나둘씩 두준의 가게에 모인다.
비를 흠뻑 맞아 머리털이 앞으로 쏠려 눈을 가리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는 토끼. 떨어지는 비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은 가지에 붙은 잎들이 뿔에 한껏 엉킨 사슴, 날아가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들어온 부엉이 등등. 두준의 옆에서 비가 온다는 것을 알려준 새는 어느새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씩을 건네고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어린 토끼가 다급하게 두준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 모습에 두준은 무릎을 굽혀 토끼 앞으로 고개를 숙이자 토끼는 코를 찡긋거리며 자신이 본 것을 빠르게 두준에게 전달하였다. 두준은 토끼의 귀가 훌렁 넘어가도록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했다.
“내 그쪽으로 가볼 터이니 너도 여기서 몸을 녹이고 있거라.”
그리고 두준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 토끼가 말한 곳으로 다가가자 소나무 아래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여우 한 마리가 잔뜩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여우의 귀가 빠르게 쫑긋거리더니 눈을 뜨곤 자기 앞에 있는 두준이를 경계한다.
“쉬. 착하지. 괜찮아. 어린아이가 네가 다쳤다고 하더구나. 발을 좀 보여주련?”
그런 두준에게 돌아오는 것은 경계가 가득 섞인 여우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쳐버렸는지 여우는 그 자리에 털썩 누워버렸다. 두준이 앞으로 다가가 다친 발을 보아도 여우는 그저 곁눈질로 자신의 발을 이리저리 쳐다보는 두준이의 모습만을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두준이는 다친 앞발에 조심스레 붕대를 감아주곤 더는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여우 옆에 세워 자리를 잡아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너를 데려가고 싶다만, 네가 싫어할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겠다. 비가 그치면 먹을 것은 다른 이를 시켜 보낼 터이니 먹고 기운 내어 가던 길마저 가거라.”
두준의 말에도 지친 여우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하염없이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렇게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숲속 작은 두준상회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내며 누군가 안에 들어온 것을 알렸다. 그 소리에 두준은 고개를 내어 상대방에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시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영에 두준은 의아함을 가득 담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여긴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그대는 누구신가.”
들어온 남자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저 애꿎은 손가락만 괴롭히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에 두준은 그저 웃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뭐 이렇게 들어온 것도 인연이니 편한 곳에 앉으시오.”
“아... 저,저기”
그러자 갑자기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두준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자 순식간 남자의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말하시오.”
나긋하게 퍼지는 두준의 목소리에 남자는 두준의 앞으로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살짝 놀랐던 두준도 그가 내민 것을 확인하곤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 지난번 그 여우로구나. 무슨 일로 여길 찾아왔느냐.”
“지, 지난 번에 빌려주신 우산을 돌,돌려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착한 아이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저, 저는 준형이라고 합니다.”
준형이라 말한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두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준형이를 향해 웃으며 다시 한번 이야기를 건넸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밖에 나가 앉아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
앞뜰에 놓인 평상에 두준이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자, 준형이 곁눈질로 두준을 바라보고는 그의 옆에 조심스레 자리 잡아 앉는다. 그 모습에 두준은 준형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날씨가 참 맑지 않으냐.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에 다가섰구나. 그나저나 어찌 그런 험한 꼴을 당하였느냐.”
두준의 질문에 그날 일을 회상이라도 하듯 준형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몸을 피하고자 소나무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날카로운 것이 저를 찔렀습니다.”
“그래. 덫에 걸렸구나. 상처는 다 나았느냐?”
다시 한번 들리는 두준의 질문에 준형은 자신의 팔을 두준의 앞으로 불쑥 내밀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두준님께서 치료해주셔서 지금은 이렇게 다 나았습니다.”
내민 팔을 유심히 보던 두준은 준형의 미소에 함께 웃으며 어린아이 달래주듯 준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나았다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헌데 아직 인간화가 미숙하더냐.”
“아, 그, 그것이...”
준형의 머리를 제 큰손으로 쓰다듬어주던 두준은 어느새 머리칼 사이로 삐죽 삐져나온 준형의 귀를 손끝으로 간지럽히며 웃어 보였다. 그의 행동은 준형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손가락만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이보거라. 네 여우 귀가 다 나오지 않았더냐.”
“아, 아직 인,인간으로 변한 적이 많이 없어서....”
두준은 자신에게 미안할 것도 없는 이 아이가 그저 자신에게 귀를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미안함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고개를 숙여 우물쭈물하는 준형의 뺨에 손을 대고는 그대로 얼굴을 들게 했다. 그러자 두준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손길은 내치지 않는, 아니 내치기는커녕 꼬리까지 흔들고 있는 준형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 났다.
부드러운 뺨을 쓸어내리자 이내 눈을 감고 제 손바닥에 얼굴을 비벼대는 준형의 모습에 두준은 웃음을 참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 갈 곳은 있느냐?”
들리는 두준의 음성에 준형은 눈을 반짝 뜨고는 두준에게 대답했다.
“그, 그것이... 우선은 두준님께 우산을 돌려드리고...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허면 아직 정해진 길은 없다는 뜻이더냐.”
“... 네.”
이마저도 두준에게 폐가 될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준형의 모습에 두준은 환하게 웃으며 품 안으로 살짝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는 등을 쓸어내리며 준형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다면 네 거처가 정해질 때까지 나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지 않겠느냐.”
두준은 준형이의 목소리를 통하여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두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을 가로지르며 흔들리는 준형의 꼬리가 준형의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
오늘도 여전히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상회 앞 평상에는 두준이 담배를 물고 앉아있다. 그러자 두준의 곁의 맴돌던 새는 두준의 어깨에 앉아 쉼 없이 지저귄다. 그 지저귐에 두준은 웃으며 알겠노라 대답하고 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열린 문을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준형아. 이리 나와 보아라.”
부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듯 나온 준형이는 두준의 앞에 섰다. 그러자 두준이 제 옆에 앉으라 고갯짓을 한다. 그 모습에 준형이 조심스레 옆에 앉아 두준은 몸을 틀어 준형이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아직도 귀가 삐죽 올라온 준형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모습에 준형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두준의 시선을 마주한다. 그러자 두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자신을 손길을 느끼며 귀를 쫑긋거리는 준형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비바람이 세차게 분다고 하더구나. 오실 분들은 미리 오시라 일렀으니, 우리도 들어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꾸나.”
두준의 말이 끝나자 준형이 허공에 꼬리를 흔들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함께 움직이는 귀를 보고 두준은 더없이 밝게 웃어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준형에게 손을 내밀었고, 준형은 망설임 없이 두준의 손을 잡고 상회 안으로 들어갔다.
태풍이라도 온 듯이 여름이라 느껴지기 어려울 정도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린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에 여리고 여린 작은 새들은 겁을 먹은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로를 다독여준다. 그 모습에 준형은 따뜻한 차와 함께 따뜻하게 데운 콩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 모습에 새들은 준형이에게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였고, 준형이는 볼을 붉히며 괜찮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종전에 자신이 다쳤다는 것을 알려준 작은 토끼를 만나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네가 두준님께 알려드린 것이지?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준형을 바라보던 토끼는 이내 조심스레 다가와 제 눈높이에 맞춰 꿇고 있는 준형의 무릎에 제 뺨을 부볐다. 그렇게 준형은 더는 외롭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을 살뜰히 보살핀 준형은 이내 창가에 다가가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준은 준형의 곁으로 다가가 얇은 담요를 걸쳐주었다. 그리곤 준형의 뒤에 앉아 어깨를 살짝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그의 어깨에 기대었던 준형은 살짝 고개를 돌려 두준을 바라보던 준형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리곤 입술을 열었다.
“비를 싫어했어요. 혼자 남은 나에게 더 큰 외로움을 주는 것 같아서요. 춥고 쓸쓸하고 코끝에 전해오는 비 냄새마저 외로웠어요.”
귓가에 들려오는 준형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두준이 조금 더 힘을 주어 준형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준형의 어깨에 턱을 괴곤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도 그 비 덕분에 나를 만나게 되지 않았느냐. 앞으로는 네가 힘들었던 시간 내 다 보상해줄 터이니 그리 생각 말아라.”
진심을 전하는 두준의 말에 준형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두 눈을 감고 안긴 두준의 품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
유독 바람이 차갑다고 느껴졌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준형이 감기에 걸려버렸다.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하고, 코를 훌쩍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도 두준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어 답답했다. 따뜻한 차를 건네고 그를 품에 안아 다독여주었다.
“준형아. 괜찮으냐. 네가 아프니 나까지 기운이 빠지는 것 같구나.”
“콜록. 죄송해요. 두준님. 제가 두준님께 옮길까 걱정입니다.”
두준은 저에게 죄송할 것도 없는데, 이렇게 말을 하는 준형이 조금 얄미워졌다. 한없이 기대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고 속상한 두준이었다. 그 순간 두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준형이의 손을 잡고 제 쪽으로 당겼다.
순수하게 끌려온 준형은 여전히 잔기침을 하며 두준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두준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을 준형이 역시 알아차렸다.
“두,두준님. 왜 그러세요?”
“내 이리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안 되겠구나. 한 번에 치료하는 방법이 생각났다.”
치료라고 말하는 두준의 말에 준형은 꼬리를 흔들며 그게 무엇이냐 두준을 재촉하였고, 두준은 두 눈을 감고 그대로 준형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떨어진 입술에 두준이 눈을 뜨고 준형을 바라보자 너무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두준은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떼어내자 숙여지는 고개에 준형의 볼을 잡고 들자 귀 끝까지 발갛게 변해버린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두준은 그대로 안아버렸다. 그러자 두준의 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준형이 팔을 들어 두준의 옷깃을 쥐었다. 그리고 두준은 준형의 귓가에 이 세상 그 어떤 한 것보다 달콤한 목소리로 준형에게 속삭였다.
“사랑한다. 준형아.”
준형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준형이의 온몸에서 대답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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