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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글

[투준] coffee

더블제이'-' 2018. 4. 27. 23:04






 나의 사랑은 매일 마시는 커피를 닮아 쓰디썼다. 시럽을 넣어 다디단 맛을 느껴도 그때 잠시뿐이었다. 단 한 번도 달콤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럽의 달콤함도 커피 본연의 쓴맛을 감춰주지 못했다.
 
 
 

 그 사람과의 사랑이 그러했다. 대학 시절 사랑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이별을 요구했다.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없었다. 도망가다시피 이별을 고한 그 사람은 이미 나에게 멀어져 있었고, 그를 붙잡고 있었던 것은 나의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방적인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정리하고 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카페를 열었다. 그저 단순히 내가 매일 자주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마음에 말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꽤나 쌀쌀했던 날씨에 처음으로 카페를 들어온 손님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들어와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메뉴가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그 남자는 꽤 오랜 시간 메뉴를 훑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건네지는 카드를 보니 학생증 겸용 체크카드이다. 오랜만에 보는 후배라 귀엽네.라는 생각을 하며 정성스레 커피를 내렸다. 아침부터 커피 향이 카페 안을 감돌았다.
 
 
 

 주문한 커피를 건네자 그 남자는 커피를 받아들고는 조심스레 커피를 한 모금 빨아냈다. 그러자 남자의 미간이 구겨지더니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써.’

 남자의 말에 살풋 웃음이 났다. 에스프레소를 연달아 마실 것처럼 생겨서 아메리카노를 쓰다고 하다니. 귀여웠다. 갑자기 터져버린 내 웃음에 남자는 민망한 듯 콧등을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쌍꺼풀 없는 짙은 눈매며 강인한 턱선, 그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내 시선을 붙잡았다. 웃음을 거두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남자에게 사과의 말과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갑자기 웃어서 죄송해요. 저희 집 커피가 좀 쓰죠? 제가 조금 쓴 커피를 좋아해서요. 초콜릿이랑 같이 드시면 좀 괜찮을 거예요. 웃은 것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해주세요.”
 
 

 
 남자는 본인 앞으로 내밀어진 초콜릿을 받아들고는 나에게 가볍게 목인사를 건넸다. 얼핏 본 남자의 얼굴은 조금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일 이후에도 남자는 종종 카페에 들려 커피를 주문했다. 남자를 바라보는 재미가 조금 쏠쏠했다. 항상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건네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번은 평소보다 연하게 커피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건넸는데도 그는 쓰다는 티를 냈다. 순간 ‘커피를 못 마시는 건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


 봄이 지나간 흔적도 없이 5월이 되었다. 봄을 지나온 것은 길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5월의 어느 날, 카페에 아는 얼굴이 찾아왔다. 대학 후배인 요섭이었다. 직속 후배라기보단, 재학 시절 학생위원회에서 만난 요섭이는 워낙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살갑게 굴어 다른 동기들 보다 제법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내가 졸업함과 동시에 요섭이도 군대를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아무것도 모른 체 카페에 들어와 주문하던 요섭이는 나를 보곤 놀라 소리쳤다.
 
 
 

“준형이형!!”
 
 

 
 오랜만에 만난 요섭이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재학 시절보다 선이 조금 굵어졌다는 점이다. 재학 시절엔 조금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은 핸섬한 남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요섭이에게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지냈던 이야기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요섭인 ‘졸업한 선배가 카페를 열었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그게 형일 줄은 몰랐다.’라며 반가워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그 다음날에도 요섭이는 카페를 찾아왔다. 이번엔 그와 함께였다. 들어온 요섭은 아이스 초코를 시키며 옆에 있는 그에게 물었다.
 
 
 

“뭐 마실 거냐. 윤두준.”
 
 

 
 아, 이름이 두준인가 보다. 나는 학교 후배를 우연히 만나고, 그 후배 덕분에 그의 이름을 알게 되어 반가운 생각에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오늘도 아메리카노 드실 건가요?”
 
 

 
 내 말이 건네지자 그는 티가 나게 움찔거리며 요섭이의 눈치를 살폈다. 의아함에 그를 바라보자 이번엔 나보다 더 의아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요섭이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메리카노? 니가? 천하의 초딩 입맛인 윤두준이 아메리카노를?”
 
 

 
 당황한 그는 조용히 하라며 눈치를 주었고,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요섭이의 눈치에도 두준이는 꿋꿋하게 인상을 쓰며 커피를 마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섭이는 항상 비웃었다. ‘사람이 안 하던 것을 먹으면 죽는 날이 가까워져 오는 거라던데?’라면서 말이다.
 
 
 

 조금 더 무더워지기 시작한 어느 날 저녁, 카페를 정리하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영업 끝났습니다.’라는 말을 건네도 다시 나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손님이 듣지 못했나 싶어 다시 ‘죄송해요. 영업 끝났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돌아보자 나에게 지독하게도 쓰디쓴 사랑을 건네준 장본인이 서 있었다. 재회의 기쁨 따윈 없었다. 그저 쓰디쓴 커피를 물고 있는 듯 쌉쌀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오랜만이네. 너는 여전하네. 변함이 없다. 아직도 커피는 좋아하고?”
“갑자기 나타난 게 반갑지 않네. 나에 대해 안다는 그 말투도 구 남친? 그런 느낌도 별로고.”
“그때는 미안해. 사랑보다 내 앞길이 더 간절했어. 사랑과 취업을 두고 저울질한 게 맞아. 두 마리 토끼 모두 다 잡고 싶었어. 그런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안 되겠더라.”
“...”
“그렇지만 지금은 할 수 있어. 준형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때보다 더 잘할게.”
“끝까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차라리 잘 됐다. 우리라고 다시 엮이지 말자. 너와 나 남남이야.”
 
 
 

 그렇게 내 할 말을 끝내자 그 사람이 나를 부르려는 순간 뒤에서 ‘형’이라는 소리와 함께 두준이가 들어왔다. 왜인지 두준이에게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타이밍도 참... 두준이는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처음부터 자리에 있었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의 걱정이 들었다. 갑자기 들어온 두준이 덕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와 그 사람을 번갈아가며 보던 두준이는 성큼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말을 건넸다.
 
 
 

“형. 왜 아직도 정리 안 했어요. 영화 보러 가기로 했잖아.”
 
 

 
 건네지는 말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전락해버린 그 사람은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친한 동생이라 대답하려는 순간 한 박자 빠르게 ‘애인이요,’라며 두준이가 대신 대답했다. 대답에 놀란 것은 그 사람도 아닌 바로 나였다. 갑작스레 등장해 말도 안 되는 소릴 저 사람 때문에도 머리가 복잡한데 두준이가 한몫 더해주었다. 복잡한 마음에 전 사람은 밖으로 내쫓으며 다시는 얼굴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두준이는 옆에서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커피를 내려 두준이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고 두준이를 바라보자 아까의 기세는 사라지고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말했다.
 
 
 

“그냥, 형이 그 사람과 말하는 게 싫었어요. 다시 엮이는 거 보고 싶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다 들었구나.”
“...네.”
“두준아. 너 사실은 커피 못 마시지? 근데 왜 항상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거야?”
“네. 원래 못 마셔요. 양요섭 말처럼 초딩 입맛이라. 그런데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형 생각이 나요. 쓴맛 뒤에 찾아오는 부드러운 향이 형을 닮았어요. 처음에 느껴지는 쌉쌀하고 쓴맛을 감싸주고 싶어요.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요.”
“...”
“앞으로도 커피를 마시면서 형 생각을 자주 하고 싶어요. 항상 보고 싶고요. 제가 형을 좋아해요.”
 
 
 

 내 사랑을 닮아 쓰디썼던 커피는 앞으로 조금 달콤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어느 시럽보다 다디단 두준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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