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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짧은 이야기

[투준] 밸런타인데이

더블제이'-' 2019. 3. 6. 21:42


* 카테고리 '조금 짧은 이야기'는 조금 더 짧은 줄거리 형식으로 글이 올라옵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가로운 오후. 테이블 위에 따뜻한 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잔을 들어 입술에 가만히 대어본다.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창밖을 둘러보는 순간 경쾌한 종소리에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하였고, 상대방을 확인한 내 얼굴에는 살풋 미소가 번졌다. 상대방 역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내 쪽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고 앉는다.

 

“형.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그런데 벌써 커피를 이만큼이나 마셨어요?”

 

 제법 줄어든 커피의 양을 보며 그는 놀리듯 나에게 물었고, 그의 질문에 입을 가리고 조금 더 크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내 앞으로 내민 것은 올해도 변함없는 초콜릿이었다.

 

“올해에도 형에게 전해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준형이 형.”

 

 올해로 두준이와 함께 맞이하는 2월 14일도 벌써 3번째이다. 몇 년 전 일을 그만두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두준이는 밸런타인데이의 달콤한 초콜릿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

 

 그날은 기광이와 함께 오랜만에 술 한 잔을 마시는 그런 자리였다.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던 그런 친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던 회사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오랜만에 거론되는 이름들에 욕도 하고, 그리워하고 또 보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만났던 기광이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야, 준형아 시간 진짜 빠르지 않냐? 내가 맡았던 반에서 윤두준 기억나?”

“윤두준? 아, 기억나지. 엄청 사교성 좋았던 친구였잖아.”

“걔가 벌써 스무 살이래. 대박이지 걔 봤을 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어린 친구들은 시간 엄청 안 간다고 생각되겠지. 우리한테야 미친 듯이 흐르지만.”

 

 윤두준이라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2년을 기광이와 함께 보냈던 학생이었다. 내 기억으론 활발한 성격과 누구에게나 붙임성있게 다가가며 지내는 남다른 친화력을 지녔던 학생이었다. 실질적으로 학생들과 만날 일이 없는 나에게도 찾아와 캔커피나 사탕 등을 전해주었다. 물론 나에게 직접 전해주진 못하고 기광이를 통해서 받았다. 갑자기 떠오른 이름을 추억 삼아 기광이와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의 추억이 촉매제가 되었을까 기광이는 불현듯 핸드폰을 꺼내어 들더니 외쳤다.

 

“야야! 우리 두준이한테 전화해보자!!!”

 

 그리고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두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기광이의 행동에 놀라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하였지만, 술에 취한 기광이를 이길 수는 없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신호음이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어.. 안녕하세요. 두준... 학생. 저 용준형이라고 해요. 혹시 기억... 하시나요?”

-아! 선생님!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세요? 지금 기광쌤이랑 같이 계세요?

“아, 네네. 기광이가 갑자기 보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요.”

 

 갑자기 연결된 통화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의외로 두준이는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몇 년 만에 그렇게 두준이와 통화를 하였다. 변함없이 밝은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두준이 말했다.

 

-선생님. 혹시 근처이시면 가도 될까요? 오랜만에 뵙고 싶어요.

 

 두준의 질문에 기광이를 바라보자 이미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웃으며 우리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고, 그렇게 두준이를 만난 그날.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르고 우리는 옛 추억에 잠겨있었다.

 

 그 뒤로도 자연스럽게 두준이와 연락이 닿았다. 연락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나를 부르는 호칭 역시 ‘선생님’에서 ‘준형이 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두준이는 조금씩 내 마음에 스며들어왔다. 우리가 연락하고 지낸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둘이 술을 마시다 조금은 엉망으로 취한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술을 마셨는지도 모를 만큼 취해버렸고, 두준이는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가는 그 길이 너무나도 설렜다. 그리고 그 설렘을 견디지 못하고 처음으로 두준이에게 입을 맞췄다.

 

 그렇지만 다음날 술이 깨고 나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든 것이 기억나버렸고, 바로 후회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하자 두준의 걱정 어린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 창피했고, 또 창피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흔들렸다는 사실과 그런데도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피하기로 했다.

 

 그렇게 잊어보고, 부정하려 보냈던 시간은 예쁘게 물들였던 나뭇잎이 매달려 있던 가지들을 하얗게 덮는 눈이 내리는 계절로 변해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도 기광이와 함께 있었다. 젓가락을 들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광이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야. 두준이랑 무슨 일 있어? 두준이가 너랑 연락 잘 안된다고 물어보더라.”

“아니... 일은 무슨.”

 

 기광이의 입을 타고 나온 질문에 가슴속 한구석에 전기가 통하듯 짜릿해졌다. 두준에게 미안한 마음과 기광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애꿎은 반찬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자 기광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한번 말했다.

 

“왜. 두준이가 자꾸 마음에 들어와? 뭐 어때. 사람이 사람 좋다는데 나이가 대수냐.”

“...”

“너네 눈빛이 예사롭진 않았어. 아무튼 이따가 두준이 여기로 올 거야.”

 

 기광이의 말에 내 눈이 한없이 커졌다. 그러자 기광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다.

 

“야. 그냥 좋으면 만나. 그러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고 자시고. 어? 두준아. 여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준이 도착했나 보다. 웃으며 우리 곁으로 다가온 두준이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고,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깜짝 놀라 두준을 바라보자 시선이 마주했다. 살짝 웃어 보이며, 기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와. 형들 밖에 진짜 추워.”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잡은 두준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 셋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즐거운 기분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기광이를 보내고 함께 돌아가는 길에 두준인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손가락 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 걸렸다. 궁금증을 갖고 두준이와 시선을 마주하자 멋쩍은 듯 웃으며 손을 빼어내고 작은 포장지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형. 내일 밸런타인데이야.”

“아...”

“그리고 정식으로 형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응? 이야기?”

 

 포장된 초콜릿에 시선을 두고 두준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한번 두준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그대로 나를 안았다. 그리고 내 손 위에 있는 그 물건보다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형. 좋아해. 나랑 만날래?”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안겨있자 두준이는 조금 더 품 안에 안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제일 잘한 건 그날 형 전화를 받았다는 거야. 지금 이렇게 형을 안아볼 수 있으니까.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는데.”

 

 학창시절 나를 만났을 때로 돌아간 듯한 그의 말에 웃음이 났다. 두준의 질문에 두말할 것도 없이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조심스레 팔을 들어 나를 안고 있는 그의 등을 안았다. 그리고 두준의 품 안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이미 14일 되었다.

 

 

 어느 추웠던 밸런타인데이 그날에 두준이는 나에게로 왔고, 우리의 사랑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년 봄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갈 계획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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