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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
*녹색창 웹튠 옛ㅅㅏ람님의 ‘소곤소곤’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맛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이 음식 맛이 없다’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無의 맛.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느낄 수 있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의 맛을 느낄 수도 없이 나는 그저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것이 내가 먹는 행위의 전부였다.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한몫하는 식욕은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릴 적 온 식구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아무 표정도 없이 밥을 먹고 있으니, 나에게 왜 그러냐 물으셨다. 그 질문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질문이기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 그냥 맛을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 나는 왜 너무나 솔직하게 대답을 하였을까, 그저 다른 사람의 표정이라도 보고 ‘맛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이후로 내 미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족끼리의 외식에 더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겨우 밖에서 살기 위해 배만 채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날 나는 독립을 했다.
혼자 있으니 더욱 음식을 해 먹을 일이 없었고, 밖으로 향했다. 그저 굶주린 배만 채우면 되기에 맛은 더욱더 나에게서 멀어졌다.
발이 닿는 곳으로 걷다 보니, 조금은 허름한 식당이 눈에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와 비슷한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반긴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수건과 레몬이 들어있는 물을 가져다주었다. 메뉴판은 그저 곁눈질로만 훑어보고 남자에게 추천 메뉴로 부탁했다.
처음 바구니에 담겨 나온 작은 크루아상을 베어 물자 바삭한 식감이 입안 전체에 감돌았다. 평소 즐겨 먹지 않아 몰랐던 식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다시 한번 베어 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희미하지만 버터의 향과 함께 맛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맛과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이 한데 뒤엉켜 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수프 준비해 드리겠....’
‘...’
‘아, 저희 집 크루아상 맛있죠? 매일 제가 정성을 쏟아 만들어요.’
들리는 말소리에 옆을 바라보니, 남자가 입꼬리를 시원하게 올려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다가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고 남자를 바라보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입술을 조심스레 열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제가 직접 만드는데,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셨나요?’
남자는 혹시라도 내 입에서 ‘맛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으로 맛이 느껴졌어요. 이런 거였구나. 맛이라는 것이.’
‘...’
‘그동안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걸까요.’
그 남자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맛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날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처럼 진지하고 또 신중하게 들어주었다. 대략적인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준형이요. 용준형이라고 해요.’
‘준형씨. 저는 윤두준이라고 해요. 앞으로 매일 이 시간에 와주세요. 제가 준형씨 입맛을 책임질게요.’
‘네? 아,아뇨. 두준씨. 번거로우시게...’
‘그렇지 않아요. 제 음식을 드시고 맛을 느끼셨잖아요. 제가 찾아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느끼셨다고 하시니 저도 울컥하고요.’
친절했다. 그리고 자상했다.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이기에 맛을 느낄 수 있었나 보다. 크루아상을 맛있게 먹은 뒤 차례대로 나오는 두준씨의 요리를 먹으며 처음으로 먹는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도 나는 매일같이 두준씨의 가게를 찾아갔다. 그의 식당은 정해진 메뉴 없이 두준씨가 그날 준비하는 재료를 가지고 요리했다. 그러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요리가 나를 반겨주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먹어보고 싶어 했던 음식을 이야기하면 그에 맞춰 준비하여 식당 영업을 한다.
‘두준씨. 나 때문에 괜히 두준씨가 하고 싶은 요리 못하는 거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준형씨 잘 먹는 모습 보니까 좋아서 그래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그 어떤 누구보다 달콤한 두준씨의 질문에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런 나를 두준씨는 빤히 바라보다 멋지게 웃는다.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서 나 역시 자연스레 입술이 호를 그리면 웃는다.
‘두준씨. 된장찌개. 된장찌개 먹고 싶어요. 항상 그러잖아요.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가 최고라고. 하지만 저는 느껴보지 못했어요. 그 맛을 두준씨가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두준씨는 환하게 웃으며 알겠다며 대답하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준형씨 디저트는 별로 안 먹네요? 안 좋아해요? 달콤한 거.’
‘달콤이요? 음, 크루아상 같은 느낌이에요?’
‘아니에요. 음... 크루아상은 담백하고 고소하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아... 그렇구나.’
‘달콤하다는 것은 사탕이나 초콜릿. 솜사탕 같은 거요. 그 맛을 달콤하다고 해요. 흔히들 달콤한 거 먹으면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진다고들 해요.’
‘아, 정말요? 그럼 저는 달콤한 거 항상 먹고 있는 것 같아요.’
‘응? 나 몰래 초콜릿이나 사탕 먹어요?’
두준씨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모습에 괜스레 심장이 세차게 뛰어 가슴에 손을 얹어 조금은 진정을 시킨 후, 다시 두준씨를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아니요. 두준씨랑 있으면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져요. 두준씨가 달콤해서 그런가 봐요.’
내 말에 두준씨의 얼굴은 조금 발갛게 물들었다. 그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알기 시작했고, 그것을 느끼게 해준 그 누구보다 달콤한 두준씨의 곁에서 그의 마음이 담긴 음식을 먹으며 한없이 달콤하게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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